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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한 번째: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1. 일상시의 영역을 개척한 시인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라고 말했죠.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고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이지만 이 중얼거림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합니다.시인 문태준 2.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

교육/시&소설 2024.09.20

우리말 배우기: 사람의 행위 편(1)- 가리 틀다, 가살, 얄망궂다, 강다짐, 강울음, 건사하다.

우리말 배우기: 사람의 행위 편(1) 1. 가리 틀다: 잘 되어가는 일을 방해하여 틀다.‘사촌이 논을 사도 배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을 빗대는 말입니다. 그런데 남이 잘되는 꼴을 보고 단지 배 아파하는 것은 시기하는 마음의 소극적인 표현입니다. 그런 마음이 더 적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가리를 트는’ 것입니다. ‘가리 틀다’는 ‘가리다’와 ‘틀다’가 붙어서 된 말로, ‘남의 횡재에 대하여 무리하게 한몫을 청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가리가 들다’는 방해물이 끼어든다는 뜻이므로 구별해야 합니다. (예시) 국내 최대 재벌이 당근과 채찍으로 노조 결성을 가리 틀었다. 2. 가살: 말씨나 하는 짓이 얄망궂고 되바라짐.말씨나 하는 짓이 얄망궂고 되바라짐 ‘얄망궂..

우리말 배우기: 생로병사(2) - 몸풀이, 쉰둥이, 시난고난, 발덧

우리말 배우기: 생로병사(2) 6. 몸풀이: 해산하다. 아이를 낳고 몸조리하는 상태몸은 생명을 지닌 육신을 말합니다. 따라서 ‘몸을 푼다’는 것은 뱃속의 생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뜻합니다. 더불어 ‘몸풀이’는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산후 조리를 하는 단계를 두루 뜻하는 말입니다. 즉 모래집물(양수)이 터져서 태아가 나오고 탯줄을 자른 뒤 산모가 몸조리를 하는 모든 과정을 말합니다. (예시) 그 암담한 시절에 나를 낳은 어머니는 몸풀이한 지 사흘 만에 호미를 들고 들로 나가야 했다. 7. 쉰둥이: 부모의 나이가 쉰 줄에 들어서 태어난 아이부모가 사십대 정도에 아이를 낳게 되면 보통 ‘늦둥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오십대의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쉰동이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쉰 줄..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 번째: 정호승, 맹인 부부 가수

1. 슬픔은 슬픔이 아니다."누구에게나 절망의 순간은 있다. 그것은 우리 삶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강한 희망의 순간이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꼭 필요하듯이 희망을 지니기 위해서는 절망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절망만 보고 희망은 보지 못한다. 그것은 밤하늘의 별만 보고 정작 그 별을 빛나게 하는 어둠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정호승 시인의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서 슬픔은 슬픔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또한 그의 시에는 슬픔, 외로움, 쓸쓸함과 같은 여러 감정이 가득차 있지만, 그 감정들은 다시금  희망을 일구어 냅니다. 그의 시어들이 우리를 뒤흔드는 까닭이죠. 2. 정호승, 맹인 부부 가수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교육/시&소설 2024.09.19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아홉 번째: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1. 노동을 시로 형상화하다.정희성 시인은 시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이 서정적 언어로 담겨있습니다. 노동과 민중에 대한 시를 많이 쓰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형상화함으로써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오늘 볼 그의 작품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입니다. 시인은 이 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습니다. "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주로 내가 사는 시대의 모순과 그 속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관해 써왔지만, 그것이 진정한 신념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데 이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이러한 성과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한 시대의 사회적 모순이야말로 바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며 억압받는 사람들의 슬픔이 어느 땐가는 밝은 웃음으로 꽃필 것임을 나는 믿..

교육/시&소설 2024.09.19

우리말 배우기: 생로병사(1)

우리말 배우기: 생로병사(1) 1. 궂기다: 상사가 나다. '죽다'의 존댓말. 잃에 해살이 들어 잘 되지 아니하다.누군가 죽은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부고 訃告' 또는  '부음 訃音'이라 하는데 이를 '궂긴 소식'이라 합니다. '궂기다'는 '궂다'에서 갈라진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궂다'는 원래 날씨가 좋지 않거나 일이 잘 안 되어 언짢고 나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궂다'가 '눈이 멀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눈이 멀면 세상상의 햇빛을 더 이상 볼 수 없죠. 그래서 사람의 죽음을 '눈을 감다'라고 하는 것처럼, 사람이 죽는 것을 '궂기다'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편 '궂기다'가 '사람을 죽게하다'는 뜻의 타동사로 쓰이게 되면 '궂히다'가 됩니다. (예시) 음..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여덟 번째: 김종삼, 술래잡기

1. 삶의 변방에 서서 그늘을 노래한 시인천상병은 김종삼에 대해 '말없던 침묵의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사나이가 남긴 시를 읽으면 폐허의 삶을 시와 음악으로 버텨온 한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230편이 넘는 시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니 그의 침묵은 우리 속에서 여전히 말을 건네옵니다. 그 중 세 편을 만나보려 합니다. 2. 김종삼, 술래잡기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술래잡기였다.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술래가 되었다.얼마 후 심청은눈 가리기 헝겊을 맨 채한 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출전 : 《십이..

교육/시&소설 2024.09.12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일곱 번째: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1. 삶의 변방에 서서 그늘을 노래한 시인천상병은 김종삼에 대해 '말없던 침묵의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사나이가 남긴 시를 읽으면 폐허의 삶을 시와 음악으로 버텨온 한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230편이 넘는 시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니 그의 침묵은 우리 속에서 여전히 말을 건네옵니다. 그 중 세 편을 만나보려 합니다. 2.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교육/시&소설 2024.09.12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여섯 번째: 김종삼, 민간인 民間人

1. 삶의 변방에 서서 그늘을 노래한 시인천상병은 김종삼에 대해 '말없던 침묵의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사나이가 남긴 시를 읽으면 폐허의 삶을 시와 음악으로 버텨온 한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230편이 넘는 시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니 그의 침묵은 우리 속에서 여전히 말을 건네옵니다. 그 중 세 편을 만나보려 합니다. 2. 김종삼, 민간인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 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창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출전 : 《시인학교》 (1977) 3. 이숭원, 해설 이 시의 첫 두 ..

교육/시&소설 2024.09.12

우리말 배우기: 사물의 이름 편(3)

우리말 배우기: 사물의 이름 편(3) 11. 보람: 드러나 보이는 표적. 다른 물건과 구별해두는 표시나 표지 ‘보람’은 오늘날 ‘어떤 일에 대한 좋은 결과’를 뜻하는 말로 그 쓰임이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밖에도 ‘약간 드러나 보이는 표적’ 또는 ‘물건에 붙여두는 어떤 표지나 표시’를 뜻하기도 합다. 예컨대 책의 쪽 사이를 구분하도록 달린 줄을 ‘보람줄’이라 하고, 옷가게에 진열된 옷의 가격, 크기, 옷감의 재질 등을 적어 달아놓은 표지를 ‘보람표’라고 합니다. 한편 어떤 일을 잊지 않거나 다른 물건과 구별하기 위하여 표를 해두는 것을 ‘보람하다’라고 합니다. (예시) 값을 치르고 영수증을 받아 든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보람표에 적힌 것과 영수증의 옷값이 서로 다른 것이었다. 12. 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