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124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 한 번째: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1. 강물 따라 흐르는 우리 삶 가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많은 이들이 쓸쓸함과 낙엽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만날 시는 ‘가을 강’에 주목해요. 가을강을 두고 ‘울음이 타는’ 것으로 표현하며 마치 강물이 흐르는 동안에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결과 강물의 흐름은 단순히 자연 풍경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흘러들어오죠. 2.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

교육/시&소설 2024.08.30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무 번째: 황동규, 즐거운 편지

1. 편지를 쓴다는 것1997년 한국 영화 관객 수 1위 영화를 아시나요?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연인을 위해 주기적으로 편지를 보내오는 한 남자와 그의 편지를 기다리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영화 ‘편지’에는 한 편의 시가 등장합니다. 바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죠. 시인은 고3시절에 한 연상의 여인을 엄청 짝사랑했다고 하는데 그 여인에게 보내는 연가가 바로 즐거운 편지>였습니다. 편지는 마음의 잔물결을 종이 위에 새기는 일이자 종이 속에 멈춰 있는 작은 기억이 조각이라고도 하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하는 이를 위해 편지를 쓴다는 것,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기다린다는 것. 황동규 시인의 시를 통해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봅시다.  2. 황동규, 즐거운 편지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

교육/시&소설 2024.08.29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⑲: 고은, 눈길

1. 처음 만난 세계  책갈피 인용구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나오는 말입니다.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이 남긴 명언을 다듬은 표현이죠. 여기서는 사랑이라 표현했으나 마음의 눈이 바뀌는 순간 세상의 모습은 변화한다는 인식론적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늘 마주하던 세상과 경험했던 일들이 이전과 달리 완전하게 새로이 탈바꿈하는 일을 경험해 보신 적이 있는지요. 고은 시인은 수십 번 보아왔을 눈 내리는 풍경 앞에서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낯익은 마을, 익숙한 풍경 앞에 서서, 낯선 지역, 처음으로 눈 내리..

교육/시&소설 2024.08.29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⑱: 김수영, 눈

1. 김수영이고자 발버둥 친 시인 김수영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에 대한 강신주 교수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김수영은 김수영이려고 발버둥 친 시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고 긍정한 시인이다. 그가 자신을 자신으로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체의 것에 저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자신을 부정하는 모든 것과 맞서 싸울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권력이나 자본주의는 노골적으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고, 일상의 도처에서 우리를 길들이고자 기회를 엿본다. 자유의 시인 김수영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게 만드는 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적이 도처에서 산재해 있어서일까. 그는 1968년 6월 16일 비운의 교통사고로 새상을 떠날 때까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교육/시&소설 2024.08.28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⑰: 김현승, 눈물

1. 눈물의 시인, 김현승김현승의 시에는 눈물이 많습니다. 감사와 회개와 그리움의 눈물들. 그러나 그의 눈물은 슬픔에 휩싸여 있기보다는 정결함으로 충만합니다. 그의 시에서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상징을 넘어, 인간의 고통과 그로부터 오는 구원, 그리고 생명에 대한 깊은 인식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그의 눈물을 마주하면 우리의 감정은 고양되기보다 정화됩니다. 눈물은 우리 삶의 새로운 씨앗이자 열매가 됩니다. 2. 김현승, 눈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

교육/시&소설 2024.08.28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⑯: 김종길, 성탄제 聖誕祭

1.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감정보다는 책임감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리가 부모의 위치에 설 무렵이 되면 ‘나’의 많은 부분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깨닫죠. 김종길의 성탄제는 이러한 발견을 담고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2. 김종길, 성탄제 聖誕祭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 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

교육/시&소설 2024.08.28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⑮: 김춘수, 꽃

1. 저마다 다른 꽃을 피우는 시김춘수의 ‘꽃’은 누군가에는 철학적 물음을 담은 시로, 누군가에는 사랑의 시로, 누군가에는 자아실현의 시로 받아들여집니다. 해석의 폭이 넓고 그만큼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시죠. 한 편의 시가 시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다른 꽃을 피우게 만든다고 할까요. 한번 감상해 보시죠. 2. 김춘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교육/시&소설 2024.08.27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⑭: 박두진, 해

1. 생명력과 신비로 가득찬 세계 박두진의 시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찬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생명력과 신비로 가득 찬 존재로 묘사하며, 그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자연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생명의 힘과 숭고함을 표현하려는 시인의 노력은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여기서는 그의 대표작 ‘해’를 만나 보겠습니다. 2 . 박두진,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어,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어……   해야, 고운 해..

교육/시&소설 2024.08.27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⑬: 박목월, 나그네

1. 시로 만나는 평화로운 경험 박목월은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입니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마치 조용한 자연 속에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깊고 평화로운 경험을 제공합니다. 외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낭만적 유랑의식을 그의 시 ‘나그네’로 경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2. 박목월, 나그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삼백 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1946. 6).출전 : 《청록집》 3. 이숭원, 해설 이 시는 일제 말에 조지훈의 완화삼玩花衫>에 대한 화답시로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대해, 일제 말기에 쓴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그당시 농촌의 피폐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술 익는 ..

교육/시&소설 2024.08.27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⑫: 김광균, 추일서정 秋日抒情

1. 성공한 사업가. 그러나 시인으로 기억해 주길.김광균은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업가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두고 이런 말들을 합니다. “그가 기업에 투신하지 않고 계속 시업에 몰두했더라면 우리나라의 현대시문학사는 얼마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1950년 6.25전쟁 때 동생이 납북되고 그는 사업을 떠맡게 되는데 그가 이끈 ‘건설실업’은 성장을 거듭해 60년대에 이르러서는 중견기업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는 무역협회 부회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고, 70년대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이사직을 맡기도 했죠. 그의 시적 재능을 아까워한 문단의 친구들은 틈틈이 시를 쓰라고 권유했다고 하네요. 후에 그는 자신의 삶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사업은 생계를 위해 종사했을 뿐, 사..

교육/시&소설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