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강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사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1993년에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시 4편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으나 이후 소설 쪽에 집중해서 시집은 한참 후인 2013년에야 나왔다.
대중적인 재미와 거리가 먼, 사람의 몸을 테마로 삼은 불편하고 파격적인 소설들을 쓴다. 대표작으로는 〈내 여자의 열매〉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있다.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라는 연작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으로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그리고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처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2. 소년이 온다, 줄거리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책은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다른 6명의 시각으로 서술되며, 각자의 시점에서 사건이 펼쳐지기에 5.18을 다각도로 성찰하게 한다.
1장은 「어린 새」이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인 동호는 도청에 남아 있다. 시점은 2인칭으로 동호를 너’로 부르며 서술된다. 동호는 친구 정대와 시위대 선두에 같이 있다가 정대가 총에 맞는 것을 본다. 그 후 동호는 도청에 남아 시신을 거두고 기록하는 일을 하며 정대를 기다린다. 1장은 광주 항쟁이 발생한 도청을 배경으로 동호, 은숙, 진수, 선주의 모습이 배경처럼 포착된다.
2장은 「검은 숨」이다. 바로 동호가 찾던 정대의 시선으로 포착된다. 정대는 이미 죽은 상태로 혼만 있는 상태에서 5・18 희생자들의 죽음을 증언한다. 희생자가 어떻게 트럭에 실려 공터에 버려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자비하게 불태워졌는지 목격한다. 정대는 죽은 몸 들 간의 차이를 말한다. 어떤 몸은 고귀하고 또 다른 몸은 증오스럽 다는 것인데 그 차이는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라고 말한다.
3장은 「일곱 개의 빰」이다. 여고 3학년으로 동호와 함께 도청에 남아 있었던 은숙의 얘기이다. 서술 시점은 약 5년 후이다. 은숙은 광주 항쟁 이후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경찰은 은숙이 담당한 번역 원고의 번역자를 찾는다는 이유로 뺨 7대를 때리며 심문한다. ‘일곱 개의 뺨’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도청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한다. 그리 고 은숙은 번역자의 원고로 상연된 연극무대에서 동호를 기억하고 동호의 말을 그대로 체화하고 모방한다.
4장은 「쇠와 피」이다. 도청에 남아 있던 대학 신입생 진수의 이야 기를 ‘나’가 증언하고 있다. 증언 요청을 받아 ‘나’는 진수에 대해 진 술한다. 서술자 ‘나’는 광주 도청에 남은 이들을 기억하며 “쏠 수 없 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의 경험을 증언한다.
5장은 「밤의 눈동자」로 동호와 함께 도청에 남아 있었던 임선주가 ‘당신’으로 등장한다. 선주는 노동 운동을 하다가 5・18에 참여하 게 되는데 그 이후에는 환경 단체에서 녹취와 기록을 담당하며 일하 고 있다. 그런데 ‘증언’을 해달라는 요구에 ‘증언할 수 없다’고 얘기하 면서 녹취록의 일부를 꺼내 읽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경험한 고문을 일부 떠올리기도 한다.
6장은 「꽃핀 쪽으로」는 동호 어머니의 기억으로 30년이 지난 시 기에 동호를 떠올리는 서사이다. 동호 어머니는 계엄군이 난입한다 고 알려진 도청 앞까지 찾아갔지만 둘째 아들까지 잃을지도 모른다 는 두려움에 도청 안에 있는 동호와 만나지 못한다. 이 기억을 떠올 리며 30년의 시간을 떠올린다.
에필로드는 「눈 덮인 램프」로 마지막 장이다. 엄밀히 말해 에필로 그에 해당하는 장이다. 작가는 1980년 광주에서 느꼈던 당시의 분위 기를 떠올린다. 어른들의 어색한 침묵과 무거운 공기를 기억하며 동 호 형의 증언을 받아 적는 과정을 담아낸다.
3. 해설, ' 5.18 이후의 문학 : 고통과 책임 ' 참조
'소년이 온다'는 총 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부터 6장까지 등장 하는 6명의 인물은 광주 항쟁의 피해자이거나 희생자이다. 에필로그 서술자까지 포함하면 소설의 모든 인물이 모두 5・18을 경험한 인물 들이다. 이들이 이렇게 각각 따로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이 5・18 서 사를 재현하는 데 적절한가? 혹은 정반대의 질문도 가능하다. 이들을 이렇게 배치하는 것이 필요한가?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소년이 온다'의 경우 전지적 시점으로 조망하는 ‘하나의 역사’ 는 없다는 것이다. 5・18은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개별 인간이 겪어 낸 6개의 서사이다. 완료된 사건으로서의 ‘광주 항쟁’이나 기념되는 역사로서의 ‘광주 민주화 운동’은 없다. 오히려 이 역사 안에서 포괄 되지 못하는 고통이 드러난다.
6개의 서사에서 스토리 시간은 다르다.8 우선 2장의 정대는 5・18 당시 시위대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1장의 동호는 정대를 찾아다니 다가 도청에 남아 일을 돕다가 목숨을 잃었다. 3장의 은숙은 5・18 이 후 약 5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4장의 진수는 5・18 이후 고 문의 후유증으로 10년을 버티다가 자살했다. 5장의 선주는 1970년대 후반부터 노동 운동에 참여하다가 5・18 사건에 참여한 경우로 약 20 여 년이 지난 상황에서 5・18과 관련한 증언 요구를 받고 있다. 스토 리 시간을 전체적으로 계산해 보면 1970년대부터 2013년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도표는 인물들의 고통이 지속되는 스토리 시간이다. 각각의 인물 은 5・18 사건이 지난 30여 년 동안 어떻게 축적되어 고통의 계보 안에 남았는지 보여준다. 6개의 서사는 생존자와 희생자, 피해자와 가해자 등의 위치에서 고립, 억압, 개별화된 관계의 양상을 드러낸다. 이들은 고통의 계보가 분유하는 지점에서 나타난 고통의 얼굴이기도 하다. 각각의 인물은 고통을 통해 세계와 맺는 신체의 표면을 결정하 면서 신체의 감각을 재배치한다.10 이 시간 속에서 유독 기점이 되고 있는 시간적 배경이 있다.
우선 모든 인물이 만났던 1980년 5・18이다. 이 시간 이후 동호와 정대가 죽었고 나머지 4명은 살았다. 정대는 시위대에 있다가 총탄에 맞아 죽은 뒤 유령으로 남아 버려진 시신의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동호는 그로부터 며칠 뒤에 도청 안에 있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그 후 5년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가 폭력이 반복되 고 있는데 은숙은 바로 이 시간을 배경으로 공안 경찰의 무자비한 ‘빰 7대’를 통해 5・18을 증언한다. 그래서 3장의 내용은 공안 경찰에 게 맞은 ‘뺨 7대’를 복기하는 내용이다. 또 4장은 진수가 자살한 1990 년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데 ‘광주 사태’로 오도된 광주 항쟁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정, 수정된 시기이다. 진수는 바로 이 시기에 고 문의 후유증이 지속되면서 자살하게 된다. 5장에서는 선주가 등장한 다. 선주는 유신 체제 하에서 노동운동를 했던 시기부터 5・18을 경 유하는 시기 동안 ‘빨갱이년’으로 호명되거나 차별되었다. 광주 항쟁 에서 약 20년이 지난 시간이 배경이다. 6장은 동호 어머니의 시점에 서 동호를 떠올리며 지난 30여의 시간이 어떠했는지 증언하는 이야기이다.
광주 항쟁 이후의 이야기, 즉 5년, 10년, 20년, 30년 동안 지속된이 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각각 누구와 어떻게
만나 접속했고 이별했는지 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5・18 이 후 ‘정치적인 삶’과 ‘생명뿐인 삶’으로 분열하면서 고립, 배제, 억압되는 고통을 겪었다. 이들의 고통은 5・18 이후 30여 년 동안 반복, 축적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동질화할 수 없다. 또 ‘희생자’나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이 들의 고통을 차이나지 않게 복수화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각 장의 인물들이 고립, 억압, 배제되는 양상에도 차이가 있다. 1장 과 2장에서 동호와 정대는 중학교 3학년 학생이다. 이들은 시위대 속 에 있다가 한 명은 살았고 또 한 명은 죽었다. 1장의 동호와 정대는 시위대에 휩쓸린 직후 정대는 총에 맞고 쓰러져 시체 더미에 놓이게 되었고 동호는 친구의 손을 놓친 뒤 도망친 자신을 자책한다. 죽은 정대는 목소리 없는 시신의 위치에서 인간의 생명이 어떻게 삭제, 소 거되는지 목격한다. 동호 역시 목소리는 없지만 집합된 무리 속에서 목격하는 존재로 재현된다. 정대는 동호의 기억을 통해 애도 가능한 죽음으로 증언되고, 동호는 도청에 있었던 은숙, 선주, ‘나’ 등의 기억 을 통해 증언된다.
3장의 은숙은 도청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영혼이 부서졌다’고 생각 한다. 정치적 삶이 박탈된 채 ‘치욕적인 삶’만 남은 것이라고 판단한 다. 은숙은 대학도 채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는다. 은숙은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온 몸으로 기억하며 5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1980년대 5 월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자기 학대로 보일 정도로 고립을 자처한다.
4장의 진수와 ‘나’는 5・18 고문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면서 ‘날마다 혼자서 싸운다’(135)라고 생각한다. 진수와 ‘나’는 도청에서 체포된 후 ‘극렬분자’로 분류되면서 고문의 정도와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고문 경찰이 ‘고통을 주는 방식’은 진수와 ‘나’에게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긴 일이었는지’ 다시 말해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굶주 린 짐승’라는 자기 혐오와 수치를 내면화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 래서 고문 이후에도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다.’는 말을 통해 광주 항쟁 이후에도 고문의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않았음 을 증언한다. 이는 은숙의 ‘치욕적인 삶’과 연동한다. 진수와 ‘나’는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라는 변화된 세태를 경험하며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동호와 은숙의 경우가 또 다른 경우이다. 4장의 진 수와 ‘나’의 고립은 자기 혐오를 내면화하는 것과 동시에 고통의 공 통성이 지워지며 이중적 소외가 중첩된 경우이다.
5장의 선주는 유신 시절 노동 운동을 했지만 그 시절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심지어 노동 운동을 할 때 믿고 의 지하던 성희 언니조차 모른 척한다. ‘당신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당신 스스로 밀어내지 않 나’(161)라고 서술이 이런 상황을 반영한다. 즉 다른 사람들과의 접 촉, 만남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얘기 한다. 선주의 몸은 유신 시절 노동 운동에서부터 5・18에 이르는 시간 을 관통하며 나체 시위와 성고문에 이르기까지 국가 폭력을 여성의 몸으로 관통해 온 역사를 반영한다. 선주는 목숨은 부지하고 있지만 줄곧 ‘빨갱이년’으로 조작된 낙인과 협박 속에 살아가면서 오직 안전 한 곳을 찾기 위해 사회적 관계를 해체하며 고립을 자처하고 있다. 즉 선주는 유신 시절부터 5공화국에 이르는 시기 동안 여성의 몸이 어떻게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했는지 증언하고 있다. 그 고통의 구체 성이 5장을 관통하며 기록되고 있다.
장의 어머니 역시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을 혼자 되새기며 살아간 다. 동호의 작은형은 시민군의 만류에도 직접 들어가서 동생을 찾겠 다고 했지만 동호 어머니는 둘째 아들을 만류한다. 둘째 아들까지도 잃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은숙이 도청 밖을 결정하며 ‘치 욕적인 삶’을 떠올린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 둘을 잃을 수 없어 그대 로 둘째와 같이 나왔다고 말하는 동호 어머니의 고통은 ‘치욕적인 삶’ 에 더해 육친의 정까지 파괴된 상황에서 기인한다.
이 모든 인물들 중에 누가 희생자인가? 고통의 보상 시스템 안에서 수치화된 희생자는 동호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대처럼 불태워 사 장된 시신은 이 통계에 포함되는가? 또 은숙처럼 여전히 고립되어 살 아가거나 선주처럼 낙인 효과를 무서워하는 인물은 피해자가 아닌가? 그렇다면 이들은 고통을 말할 수 없는가? 분명한 것은 희생자로 통계 에 잡히든 그렇지 않든 이들은 고통을 통해 증언한다는 점이다. 5・18 한복판에서, 산화되는 시신 더미에서, 1980년대 중반 원고 검열과 무 대 난입의 장면에서, 199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복권되었지만 피해자의 삶과 무관한 지점에서, 뿐만 아니라 5・18이 이십 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국가 폭력의 혐오에서 자유롭지 않은 채 모든 인물 들은 고통 속에 있다. 각 장의 스토리 시간을 연결해 보면 유신 시절 부터 용산 참사까지 계속된다.
5・18 이후 이들의 언어적, 정치적 삶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저마다 의 고통 속에서 ‘벌거벗은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다. 유신 시절부터 용산 참사에 이르기까지 가치 있는 삶이 부서진 자리마다 이들은 ‘타자의 얼굴’로 나타난다.
각 장을 연결하면 지난 40년 간의 역사가 ‘국가 폭력과 고통’이라는 주제로 요약된다. 고통이 집적되는 역사 속에서 가시화된 것은 ‘고통의 얼굴’이다. 이들을 대면하지 않은 채 ‘5・18 이 후’를 상상하기 어렵다. 이들은 국가 폭력에 노출된 채로 배제와 소 외를 체화하고 있지만, 취약한 존재들 간의 연결과 연대를 통해 책임 의 문제를 성찰하고 있다. 5・18 이후 ‘책임’은 가해자 몇몇의 ‘책임자’ 표상으로 고정되었지만, 이 소설에서 묻고 있는 것은 고통하는 ‘우/ 리’의 삶을 변화시켜내는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우리’ 사이에 놓인 빗금은 ‘우리’ 안에 놓인 ‘차이’를 외화시킨 것이다. 하나의 역사로 동 질화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고통의 공통성으로 연결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로 집합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신을 기투하며 어떻게 타자와 만날 것인지 물어야 한다. 이는 단지 야만적 인 국가 폭력과 저항하는 개인의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다.
4. 작가의 말
Q. <소년이 온다>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
<소년이 온다>를 썼던 기간은 제 인생에서 1년 반 정도이지만, 그 기간의 밀도가 굉장히 높아서, 그리고 그 소설을 쓰고 나서의 여파도 길었고. 그래서 누군가가 제 소설을 읽고 싶다고 말할 때, 그럴 때가 있다면 <소년이 온다>를 먼저 말씀드리는 편이에요.
Q. 왜 직접 겪지 않은 5.18을 다뤘나.
제가 광주 사진첩을 처음 본 게 12살, 13살 즈음이었는데, 그 사진첩에서 봤던 참혹한 시신들의 사진, 그리고 총상자들을 위해서 헌혈을 하려고 병원 앞에서 줄을 끝없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이 2개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졌거든요. 인간이란 것이 이토록 참혹하게 폭력적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집에 머물지 않고 나와서 피를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게 너무 양립할 수 없는 숙제 같았어요. 그래서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제 안에 아직도 이렇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기 때문에, 제가 인간에 대해서 말하려고 할 때 '5월 광주를 결국은 뚫고 나아가야 되는 거구나, 언제나 그랬듯이 글쓰기 외에는 그것을 뚫고 나갈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쓰게 됐던 거예요.
Q. 소설에 '망자의 목소리'를 등장시킨 이유는?
이 소설의 구성을 짤 때 1장에서 일단 이 소설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다 등장을 했으면 했고, 마치 빅뱅처럼 멀리 파편이 튀듯이, 가까운 과거부터 튀겠죠? 그래서 현재까지 오게끔 그렇게 하고 싶었고요. 2장에 나오는 정대, 죽은 사람의 목소리는 제가 광주 사진첩 말씀드렸는데, 그 사진첩에 그렇게 참혹한 자상과 총상을 입은 사람들의 사진이 있었던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 얼굴들 자체가 증언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도 증언을 할 수 없었던 실종자들이 존재하잖아요. 그 수도 알 수가 없고. 그래서 한 장은 그렇게 실종된 사람의 목소리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Q. 제목은 왜 <소년이 온다>인가.
'이 소설 못 쓸 것 같다'라고 생각이 되었을 때 그때 만나게 됐던 자료가 (항쟁의) 마지막 날 5월 27일 새벽에 돌아가신 야학교사 박용준 선생님의 일기였어요. 그분이 굉장히, 마치 동호처럼 여린 성품의 그런 분이었다고 하는데, 마지막 일기에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렇게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일기였어요. 그 일기를 보고 이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은 이 소설에서는 가장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때 떠오른 사람이 동호라는 소년의 이미지였어요. 그리고 이 동호가 1장에서 참혹한 시신들에게 하얀 천을 덮어주고 그 머리맡에 촛불을 밝히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의 처음과 끝에 촛불을 밝히고 흰 천을 덮어드리고, 그리고 그렇게 도청에 남기로 결심해서 죽게 된 동호가 우리에게 오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80년 5월에서부터 5년 뒤,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천천히 이렇게 넋으로 걸어오는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가 됐어요.
Q. 집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인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 그리고 특히 2장을 쓸 때는 조그마한 작업실을 구했는데, 거기서 한 세 줄 쓰고 한 시간 울고, 아무것도 못 하고 몇 시간 정도 가만히 있다가 돌아오고 그랬죠. 계속해서 각 장에서 '너'라는 호칭이 나와요. 동호를 부르는 거거든요. 그런 마음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너라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해도 '너'라고 부를 때는 마치 있는 것처럼 부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앞에 있는 것이죠. 그런 마음? 그래서 계속 부르는 마음? 불러서 살아있게 하는 마음? 저는 그게, 소설 마지막 부분을 쓸 때 느꼈던 것 같아요.
Q. <소년이 온다>를 통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당시 생존자들의 자살률이 11%라고 하는데, 그것이 보통 평범한 사람들의 자살률하고 비교할 수 없는 수치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거죠.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얼마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 그분들이 죽음과 싸우는 것, 그 과정을 쓰고 싶었고. 그리고 5장에 이르면 비슷한 다른 고통이지만 생존자인 선주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죽지 말아요"라는 말이거든요. 제가 이 소설을 쓸 때 1년 반 동안 썼는데, 그런 과정에서 5장을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어요. 사실상 그 소설에서 마지막으로 쓴 문장이 그거에요. "죽지 말아요"라는 문장인데, 그 말을 쓰고 싶었어요. 4장에 그렇게 고통받고 그 길을 갔던 그분들의 이야기 다음에 5장에서 또 다른 생존자의 목소리로 "죽지 말아요"라고 마지막으로 꼭 말을 하게 하고 싶었어요.
이 소설은 망자들을 불러서 초혼제를 치르고 그분들께 언어를 돌려줌으로써 절절한 증언이 되게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또 그때 참혹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사건의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항쟁의 위대한 주체였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한강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해줌으로써 당시 5월 광주를 증언한, 또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쓸 계획인지.
그냥 정말 삶의 아름다운 부분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사람이 인생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그럴 힘이 있다는 것, 그런 이야기를 이제는 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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