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한국명작소설 읽기(16)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education guide 2024. 10. 12. 10:20

1. 한강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사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1993년에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시 4편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으나 이후 소설 쪽에 집중해서 시집은 한참 후인 2013년에야 나왔다.

 
대중적인 재미와 거리가 먼, 사람의 몸을 테마로 삼은 불편하고 파격적인 소설들을 쓴다. 대표작으로는 〈내 여자의 열매〉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있다.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라는 연작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으로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그리고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처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2. 줄거리 및 해설:  '그녀들의 따뜻한 제주(조연정)' 참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가가 실제로 꾸었던 어느 날의 꿈을 묘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80년 광주’를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 (창비, 2014)를 출간한 지 두 달 정도 흐른 어느 날 작가는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가 심겨 있는 장면을 꿈속에서 목격 한다. 지평선으로 보였던 벌판의 끝이 바다였음을, 그리고 곧 밀물 이 밀려와 검은 나무 뒤편의 봉분들 속 뼈들을 쓸어가버릴 것이라고 직감한 그녀는, 어쩔 줄을 모른 채로 점점 물에 잠겨가는 검은 통나 무와 뼈 들 사이를 뛰어다니다가 잠에서 깬다. 이 꿈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 강 작가는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이 꿈은 작가의 분신이라 여겨지는 ‘경하’의 꿈으로 등장한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실제 작가로 여겨지는 인물’이 에필로그에 등장 했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그러한 인물이 작품 전면에 등장 하는 셈이다. 경하의 꿈을 시작으로 그녀가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꾸었던 악몽들이, 그리고 그 소설을 쓰던 시간과 그 이 후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오고 있는지가 그려진다. 지속되는 악몽, 몇 개의 사적인 작별의 경험들, 위경련을 동반한 편두통의 고통, 유서 쓰는 시간 등을 거쳐 그녀는, “지금 와줄 수 있어?”(p. 30)라는 ‘인선’의 호출을 받고, 친구에게, 결국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제주의 중산간 외딴집에서 홀로 목공을 하다가 손가락 마디 두 개가 절 단되는 사고를 겪고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서울로 이송된 인선은 자 신의 제주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앵무새 ‘아마’의 생사가 걱정되어 경하를 부른 것이다. “제주 집에 가줘”(p. 63)라고 인선은 경하에게 단호히 부탁한다.

 

오랜 친구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인선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며 ‘검은 나무들을 심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경하는, 자신은 이미 포기했던 그 프로젝트를 위해 인선이 제주의 그 외딴집에서 나무들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고를 당한 사실을, 엄청난 눈보라를 뚫고 그 집에 가까스로 도착한 이후 알게 된다.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1부에는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오로지 흐릿한 기억에 의존해 차도 끊기고 인적도 없는 그곳에 당도하기 까지 경하는 사력을 다해보는데, 눈 속에 고립된 인선의 집에서 그녀는 “피에 젖은 얼굴”(p. 168)로 깨닫게 된다. “죽으려고 이곳에 왔”(p. 172)구나,라고.

 

책의 출간 직후 진행된 한 온라인 행사에서 한강은 이 소설을 쓰는 시간이 ‘갱생의 시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고립된 그 집에서 경하는 꿈인 듯, 상상인 듯, 어떤 기억인 듯, 서울의 병원에 누워 있을 인선을 만나, 그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1948년 겨울 열세 살의 나이로 열일곱의 언니와 함께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 얼음이 낀”(p. 84) 마을 사람 수백 명의 죽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던, 그리고 1950년 7월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오빠를 기다리며 잠 자리에는 실톱을 가슴에는 큰 돌덩이를 두고 평생을 살았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삶을 경하는 그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죽으려고 그 곳에 왔’던 경하는 제주에서 어떻게 삶을 다시 보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 어떻게 작가에게는 ‘갱생의 시간’으 로 경험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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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는 세 여성을 축으로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의미망을 구성해간다. 이른바 “빨갱이” “절멸”(p. 220) 을 목표로 1948년 겨울부터 미 군정이 무장대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수만 명이 대량 학살을 당한 일로 정리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이 사건의 비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 소설은 경하, 인선, 정심으로 중심인물을 이동해 가면서 70여 년 전의 역사적 비극이 이 세 명의 여성을 어떻게 연결 짓는지를 설명해나간다. 군경에 잡혀간 오빠의 흔적을 찾는 정심의 노력을 그녀의 딸 인선이 추적하고, 인선이 그것을 경하에게 들려주는 과정을 상세히 재현하면서, 결국 제주에서 일어난 이러한 비극의 잔 혹함이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망각’되어왔다는 그 사실 자체에도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1960년 4·19 혁명 정신에 입 각하여 피학살자 유족회가 설립되고 처음으로 피학살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가 열린 이후, “군부가 물러나고 민간인이 대통령이 될 때까지” “삼십사 년 동안”(p. 281) 정심은 오빠를 찾기 위한 그 어 떤 자료도 모을 수 없었다. 이 사건에 관한 정심의 신문 스크랩이 멈췄던 1961년과 1995년 사이 그녀가, 그리고 수만 명 피학살자의 가족들이 모두 얼마나 끔찍한 악몽의 밤들을 보냈을지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작별하지 않는다』의 중요한 성취라는 생각도 든다.

 

세월호 사건 직후 출간되었던 『소년이 온다』가 여러모로 얼마나 소중한 작품이 었었는지를 우리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14년 이후 2021년이 되는 동안 타인의 고통과 상실에 관한 우리의 평균적 공감의 능력은 매우 퇴화되고 말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일까. 『작별하지 않는다』의 서사 속에 직접 등장하고 있는 작가의 형상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지를 몸소 증명하는 장치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작가를 쫓아가며 우 리는 인선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제주에 실제 당도하여 열세 살 이후 약 70년간의 정심의 “어둡게 채색”(p. 78)된 삶을 되살게 된다. 결국 제주에서 일어났던 형언 불가능한 비극이 소설의 소재에 불과한 것도, 청산된 역사적 사건에 불과한 것도 아닌, 현재진행의 비극이자 바로 우리 자신의 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역사를 통과한 여성들의 증언”(p. 34)을 담은 인선의 단편영화 3부작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를 인터뷰한 영화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할머니의 일상을 담은 영화를 거쳐, 인선 자신에 대한 인터뷰로 마무리되듯이,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역사를 통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삶과 별개일 수 없다는 점을 세 여성의 관계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가 한강이 다시 한번 ‘애도 불가능성’을 강력하게 말하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선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제주에서의 시간들은 경하에게 어떻게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이 소설을 쓰는 시간들은 작가에 게 어떻게 ‘갱생의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죽기 직전 치매에 걸 린 어머니를 돌보며 기진해 있던 인선에게 경하와의 프로젝트가 어떤 의지의 불꽃이 되었듯, 마찬가지로 경하에게도 제주에서 고립된 채로 인선을 생각하는 그 시간들이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 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p. 325), 부러진 성냥개 비로 마침내 불꽃을 일으키듯 어떤 살아갈 힘을 전해준 것인지 모른 다. 그 힘을 ‘사랑’이라는 말 외에 다르게 표현할 길은 없다.

 

엄마가 쪼그려앉길래 나도 옆에 따라 앉았어. 내 기척에 엄마가 돌아 보고는 가만히 웃으며 내 뺨을 손바닥으로 쓸었어. 뒷머리도, 어깨도, 등도 이어서 쓰다듬었어.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 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 311)

 

『작별하지 않는다』는 결국 사랑이라는 ‘무서운 고통’의 감각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소설이라고 읽고 싶다.  그리고 이 사랑의 힘을 ‘여성들의 연대’ 속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도 싶다. 이 소설 속에서 경하와 인선, 그리고 인선과 정심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서로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중요하게 음미될 필요가 있다.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남성 개인들의 자책과 자기 연민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말 없는 존재로 희생되는 장면들을 우리는 많은 작품을 통해 발견해왔 다. 이런 점에서 ‘여성들의 제주’를 그리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특별 함은 좀더 지적될 필요가 있다. 그녀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콩죽’을 건네고 서로에게 자신의 ‘피’를 나누는 사이, 죽은 자들의 얼굴을 덮 고 있던 눈송이들은 따뜻하게 녹아 그들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 고 그들의 고통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마주하게 한다. 타인의 고통 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바로 ‘사랑’의 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그 사랑의 힘이 여성들의 연대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다는 사 실을,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그것은 경험한 자만이 믿을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할 것이다. 이상해, 경하야. 네 생각을 날마다 했는데 정말 네가 왔어. 하도 생각해서 거의 네가 보일 것 같은 때도 있었는데. 캄캄한 어항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끈질기게 들여다보면 뭔가 안쪽에서 어른거리는 것같이. (p. 320)

 

3. 작가의 말 (메디치 문학상 수상 후)

Q. 이 작품이 작가에게 갖는 의미는?

[한강 : 이 소설은 '작별하지 않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말로 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고 헤어짐을 짓지 않겠다는 각오도 있어요. 작별하지 않겠다고 각오했기 때문에 실제로도 작별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긴 거예요. '끝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고요. … 이 소설은 세 여자의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데, 처음에는 일인칭 서술자인 '나' 경하가 주인공인 듯 시작됐다가 그다음에는 경하의 친구인 인선이 주인공인 것처럼 흘러가다가 마지막에서 인선 어머니인 정심이 진짜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게 돼요. 정심의 마음은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이고, 사랑 때문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고, 그런 인물을 그린 소설이라서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4.3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강 : <작별하지 않는다>는 2014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실제로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직후에 꾸었던 꿈이 있는데, 이게 <작별하지 않는다>의 앞 두 페이지를 이루고 있어요. 2014년 여름에 꾸었던 꿈을 일단 적어 놓았고 그 후 7년에 걸쳐서 이게 어떤 소설이 될지 다듬어보다 그러다 결국 이 이야기가 된 것이에요. 그 꿈을 처음 꾸었을 때는 이것이 4.3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요, 어떤 학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여러 가지 기억들과 생각들이 만나고 교차하면서 마침내 제주 4.3을 다룬 소설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소설은 4..3만을 다루고 있다기보다는 나중에는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학살에 대해서'까지 뻗어나가는 소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의 차이점은?

[한강 : 일부러 <소년이 온다>와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쓰지는 않았고요,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꾸었던 그 꿈에서 출발하는 소설을 쓸려고 했어요. 또 <소년이 온다>를 보면 에필로그에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서 과거를 현재와 이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제가 꾸었던 꿈이 이번에는 소설의 첫머리에서 현실과 픽션을 이어주는 그런 역할을 하게 돼요.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죠. <소년이 온다>는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로 오는 것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현재에서 점점 과거로 내려가는 형식을 띠고 있어서, 쓰다 보니 다르게 되었어요.] 이미지 확대하기

 

Q. 4.3 취재는 어떻게?

[한강 : 저는 <소년이 온다> 때도 그랬고,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상처를 다시 열고 싶지 않아서 주로 증언들을 읽는 방식으로 취재를 했어요. 특히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경우엔 7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많은 연구들이 이뤄졌고 자료도 많이 모아져 있었어요. 예를 들어 4.3 연구소에서 출간된 자료들을 많이 참고했고 도움도 받았습니다. 단행본으로 나온 자료들도 많이 읽었고. 무엇보다 제주에 자주 가서 많이 걷고 그곳의 날씨를 느끼고 그런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Q. 이 작품도 이전 작품들처럼 고통 속에서 집필했나?

[한강 : 소설은 고통에서 시작을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소설은) 정신이라는 인물의 마을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그 인물의 마음이 너무나 뜨겁고 끈질기고 강해요. 그 마음이 되려고 매일 그 인물에 대해서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고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저에게는 그냥 고통스러운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고 믿고 싶은 밝음과 힘을 향해서 나아가는 소설이라고 느껴졌어요. 고통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제가 실제로 꾼 꿈에서 시작된 제 이야기는 '나'라는 인물이 눈 쌓인 벌판을 혼자서 걸어가고 있는데 검게 칠해진 밑동만 있는 나무들이 끝없이 있고 그 나무 뒤에 무덤들이 있고 리고 언제부터 들어왔는지 모르는 바다가 점점 밀려 들어오고 있는 그런 순간이었거든요. 계속 이렇게 바다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었다면 그 무덤들의 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서, 나란 인물이 달리면서 꿈이 끝나게 되는데요. 이 꿈을 꾸고 나서 이 꿈이 무엇인가를 저에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고 그게 중요한 것 같고, 그래서 그다음을 이어서 써보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것입니다.]

 

Q. 역사적 특수성이 강한 내용인데, 프랑스 문단의 공감을 받는 이유는?

[한강 :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룬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일이기 때문에, 설령 역사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도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게 있기 때문에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Q. 학살을 소재로 소설을 썼는데, 최근 전쟁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한강 : 학살에 대해서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이라서 요즘 일에 관심이 있어요. 요즘엔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한테 희망이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돼요. 아직 답을 잘 모르겠고, 지켜보고는 있는데 굉장히 무거운 문제라고 느끼고 있어요.] 

 

Q. 소설 번역 과정에서 기억나는 일은?

[한강 : 이 소설을 번역한 분은 두 분인데(최경란, 피에르 비지우), 저한테 단 한 번도 질문을 하신 적이 없어요. 최경란 번역가 님과 시상식 때 잠깐 이야기 나눴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모든 게 굉장히 분명해서 아무것도 물어볼 게 없었다고 하시더라고요.]

 

Q. 현재 집필 중이거나 준비 중인 작품은?

[한강 : 지금 제 마음으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다음에 제가 쓰고 싶은 것은 좀 더 개인적이고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아직 쓰고 있는 소설이라서 어떤 것이라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운데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쓰고 싶고, <흰>에서도 그랬고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렇고 겨울 이야기가 많았는데, 겨울 이야기를 완성하고 나면 봄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좀 다른 결의, 다른 느낌의 소설을 쓰고 싶어요. 지금 준비하는 것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이야기일 것 같고, 바라건대 다음에는 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는데, 뜻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미지 확대하기

 

Q. 해외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은?

[한강 : 저는 글을 쓸 때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감각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문장을 쓸 때 저의 감각을 그 안에 전류처럼 흘려 넣으면 그게 읽는 사람한테 전달이 되는 것 같고, 그건 문학이 가진 굉장히 이상한 현상인 것 같아요. 내면으로 들어가서 저의 감각 감정 생각을 쓰면, 그게 번역이라는 터널을 통과해서 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이죠. 그게 그냥 문학이 만들어내는 힘인 것 같아요.]

 

Q. 작가로서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한강 :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 인데, 결국 제가 닿고 싶었던 마음은 그 마음이거든요. 작별하지 않는 마음. 그 마음을 느껴주시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또 소설이 물론 무겁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제가 이 소설을 쓸 때에는 아주 가볍고 부드러운 것들에 대해 많이 묘사했어요. 예를 들면 눈이라든지, 눈송이의 질감이라든지, 촛불의 불빛이라든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라든지, 우리의 몸이 닿을 때 느끼는 체온이라든지. 그런 부드러움과 온기에 대해서, 그런 질감들에 대해서 많이 묘사를 했거든요.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그 사건에 다가가고 있는지 감각을 느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4.10.12 - [교육/시&소설] - 한국명작소설 읽기(14) 한강, 채식주의자

 

한국명작소설 읽기(14) 한강, 채식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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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작소설 읽기(15) 한강,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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