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채식주의자』의 근원이 되는 작품,「내 여자의 열매」
한강(1970~)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그는 1994년 「붉은 닻」으로 등단을 한 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 의 열매』, 『노랑무늬영원』과 장편 소설 『검은 사슴』, 『채식주 의자』, 『희랍어 수업』,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차례로 집필 하였다. 또한 『채식주의자』는 2016년 세계에서 권위 있는 문 학상인 맨부커 상(Man Booker Prize)을 받음으로써 대중에 게 각인되었다. 그의 소설은 전반적으로 암울하며 난해하다. 주인공들은 대부분 깊은 심리적인 상처를 받고 있다. 특히 『채식주의자』는 중편 소설 3편을 엮은 것으로, 주인공 영혜는 각 소설마다 단 계적으로 악화되는 정신과적인 증상을 보이며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주인공이 자신을 나무로 느끼며 죽어가는 장면은 이성의 시각에서 이해가 되지 않으며, 소설 전통의 플롯을 무시하는 듯한 작가의 자의적인 이야기 구조는 그 난해함을 배가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 '내여자의 열매'는 이후 채식주의자로 발전하게 되는 근원적인 작품이다.
2.「내 여자의 열매」줄거리
「내 여자의 열매」는 한 여자의 몸에 멍이 퍼져 결국 나무 가 된다는 단순하지만 충격적인 이야기다. 아내의 독백 같은 하나의 내러티브를 제외하고 내러티브의 화자는 대부분 남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우선 남편의 시각을 빌려 아내를 관찰하고 설명하려 한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가정이다. 18평 서민 아파트 13층에 서 살아가는 부부로 남편은 과거 외로웠지만 직장에 충실하 면서 아무일 없는 듯 3년을 만족하며 살아간다.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의 기본적인 요구에 조용하게 잘 따르며 살아왔다. 이야기 사건의 시작은 아내가 늦은 오월 자신의 몸에서 피멍을 보여준 이후였다. “병원을 가 볼까”라는 아내의 걱정에 아내가 산만하여 부지불식중에 넘어진 줄 알고 ‘그지없이 한심하고 가엽고 서글퍼서’ 오랜만에 아내의 몸을 안아 준다. 여름 가까이 돼서야 아내는 악화된 자신의 몸의 멍을 다시 보여준다. 멍은 더 커지고 둔탁한 녹색으로 변했으며 진해졌다. 남편은 이제야 아내의 얼굴이 푸르스름해졌으며 윤기 있던 머리카락이 시래기처럼 푸석푸석해졌음을 깨닫는다. 아내는 햇빛만 보면 벗고 싶고 배도 고프지 않다고 고백한다. 또한 물을 많이 마시고 구토를 많이 한다고 자신의 고통을 말하며 운다. 남편은 아내에게 핀잔을 주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남편은 이 시점에 아내와 결혼을 결심했던 시기를 기억한다. 남편은 아내가 결혼 전 한국을 떠나 자유롭게 살기 원했던 모습과 주변 차들로 시끄럽고 답답한 아파트에 입주하기 싫어했던 모습을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몽상으로 치부하고, 자신과 “아무래도 헤어질 수가 없어서” 남편의 뜻에 순종했던 아내의 모습에 자부심을 가졌었다. 남편의 꿈인 베란다에서 화초 키우기는 결혼 초부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다 실패하였다. 피부에 멍이 심해진 아내는 정성을 다했지만 자라지 않은 황량한 화분을 보고 이 더럽고 시끄러우며 답답한 공간에 자랄 리가 없다고 ‘적의에 차서’ 이야기한다. 남편은 오히려 자신의 아슬아슬한 행복을 깨는 아내에게 물을 뿌리면서 “뭐가 그렇게 시끄러운 거야”라며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 아내는 이후 말이 거의 없어지고 점점 더 삶의 생기를 잃어 가며 몸의 멍은 넓어지고 깊어졌다. 남편은 종합병원에 가 보라고 강권하지만 자신은 바빠서 같이 갈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된다고 말한다. 더욱이 아내가 싫어하는 장모를 부른다고 하며 ‘자신의 말을 들으라’ 명령을 한다. 이 사건 이후 남편이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살림은 거의 하지 않고 몸이 거의 나무로 변해 햇빛을 향해 있는 아내를 발견한다.
메말라 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남편이 물을 가득 주었을 때 아내의 몸은 찬란한 초록빛으로 변한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고 ‘저만큼 아름다웠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이후 남편은 나무가 된 아내를 큰 화분에 옮겨 키운다. 그해 가을이 되어 나무는 석류와 같은 자잘한 열매를 맺게 되고, 남편은 그 열매의 맛도 보고 옆 작은 화분들에 분양한다. 점점 말라가는 나무가 된 아내를 보며 남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봄이 오면 아내가 다시 돋아날까. 아내의 꽃이 붉게 피어날까.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3. 해설: 무의식적 관점에서 본 소설가 한강의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 참조
남편의 내러티브를 언뜻 보면, 3년간의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다가 5월 초 늦은 봄에 아내의 몸에 멍이 드는 신체적인 증상이 시작되었고, 여름 즈음에 악화되어 결국 가을에 나무가 되어 버린 이상한 이야기가 몇 개월 사 이에 급격하게 진행이 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남편의 내러티브의 설명과 관찰을 자세히 보면 증상의 발병과 악화는 결혼 전부터 서서히 시작된 된 듯하다. 소설 전체에서 남편에 의한 네 번의 심리적인 좌절이 보이고, 이 에피소드들은 증상의 발병 및 악화를 동반하였다. 이러한 시각으로 재구성 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결혼 전부터 이 나라를 떠나 자유롭 게 살고 싶어 돈을 모았던 아내는 자신 안에 있는 ‘나쁜 피를 갈고 싶다’는 말로 진심을 표현했지만 결국 그 돈을 결혼 비용과 전세 자금에 포함시켰고, 남편은 그 돈으로 아내가 싫어하는 시끄럽고 답답한 아파트를 굳이 고집하여 구입하였다. 이 시기부터 아내는 잔병이 많았고 어려 보였던 얼굴은 서서히 나이가 들어 보였으며 종종 베란다에 ‘시든 배춧잎’ 처럼 질주하는 차들을 무기력하게 보고 있었다. 이는 첫 번째 만성적인 심리적 좌절이다.
이러한 남편 중심의 공간에서 축적된 심리적인 고통은 몸에 서서히 멍으로 나타났고, 사건이 일어나는 늦은 봄에 아내는 비로소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몸을 보여주면서 병원에 가는 것을 물어본다. 남편은 아내의 증상을 아내의 부주의 탓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는 두 번째 좌절로서, 멍은 악화된다. 시간이 지나 옷으로 숨길 수 없었던 멍을 남편에게 보이게 되고 남편의 권유로 병원 에 가게 되지만 의학적인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고 이를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심리적인 퇴행과 피부 증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아내는 자신과 동일시된 식물들이 ‘시끄럽고 답답한’ 공간에서 잘 자랄 수 없다고 분노를 표현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깨는 아내에게 “뭐가 그렇게 시끄럽다는 거야”라 며 남편은 오히려 화를 내며 손바닥에 받은 빗물을 아내에게 끼얹는다. 이후 아내는 거의 말이 없어진다. 이 에피소드는 세 번째 좌절로 아내는 자신의 깊은 고통을 화를 내며 표현 했지만 오히려 분노로 되받는 경우이다. 이후 증상은 더 악 화되었고, 이를 본 남편은 장모와 함께 종합병원을 가라고 명령하였는데, 이는 네 번째 좌절로 이해된다. 마침내 아내 는 더욱 퇴행하고 증상은 악화되어 살림 등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온 몸이 나무로 변하여 더 이상 되돌릴 수 없게 된다. 남편의 문제는 아내의 심리적인 고통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외로움을 채우거나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하는 도구로 아내를 여긴다는 것이다.
나무가 된 상태에서 아내는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말을 읊조리듯 한다. 아내의 내러티브는 마치 피분석자가 ‘자유연상’을 하는 것처럼 자신의 내면을 가상의 어머니에게 표현한다. 이러한 설정은 남편의 내러티브에서 배제된 아내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또한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몇 번 밝 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는 모습에서 남편 중심으로 굳어 진 담론 공간, 즉 가부장적인 공간에 아내의 감정과 사고가 진입하지 못함을 설명한다. 아내는 어머니를 대상으로 한 독백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다. 첫째, 자신은 ‘바람과 햇빛과 물만으로 살 수 있는’ 나무가 되길 바랐다고 말한다. 이 소망 은 반복된 꿈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어머니, 자꾸만 같은 꿈을 꾸어요. 내 키가 미루나무만큼 드높 게 자라나는 꿈을요. 베란다 천장을 뚫고 윗집 베란다를 지나, 십 오 층, 십육 층을 지나 옥상 위까지 콘크리트와 철근을 뚫고 막 뻗어 올라가는 거예요. 아아, 그 생장점 끝에서 흰 애벌레 같은 꽃이 꼬물꼬물 피어나는 거예요. 터질 듯 팽팽한 물관 가득 맑은 물을 퍼올리며, 온 가지를 힘껏 벌리고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는 거예요. 그렇게 이 집을 떠나는 거예요. 어머니. 밤마다 그 꿈을 꾸어요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의미가 내포된 이 꿈에서 아내는 문명을 상징하는 답답한 아파트를 뚫고 지나가는 나무가 되 길 소망하고, 동시에 그 ‘가지를 힘껏 벌려 가슴으로 하늘을 밀어 올리고’ 싶어 하며, 이러한 소망을 통해 자신의 집을 떠 나고 싶어한다. 둘째,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한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고향에서의 기억을 말한다. 어머니처럼 바닷가 빈촌에서 살다가 죽을 운명이 될까 봐 열일곱 살 때 가출을 하였고, 지우고 싶지만 혼령처럼 옥죄는 과거의 기억을 힘들어했다고 고백한다. 아내는 어릴 때 느꼈던 고통스러운 경험과 분노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표현한다.
나는 언제나 달아나고만 싶었어요. 울부짖고 싶었어요. 세 상에서 가장 착한 얼굴을 하고 버스 뒷자석에 웅크리고 앉아, 어머니, 주먹으로 유리창을 박살내고 싶었어요. 내 손등에 흐르는 피를 게걸스럽게 핥아먹고 싶었어요. … 왜 가지 못했을까요, 병신처럼. 왜 훌훌 떠나 이 지긋지긋한 피를 갈지 못했을까요.
셋째, 이렇게 고통스럽고 떼어내고 싶은 과거지만, 나무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어머니가 집에 두 고 간 자주색 스웨터이고 이 스웨터에는 반찬 냄새와 어머니의 살 냄새가 배어 있다. 어머니의 살 냄새는 나무가 된 후 햇빛의 따뜻함과 동일하게 느껴진다. 겨울이 되어, 화분이 좁아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어머니의 스웨터를 갈망한다. 위 내용을 통해 아내의 내러티브를 정리한다면 아내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과거를 보냈고, 고통의 공간인 고향을 잊고 싶어하지만 못하고 있다. 또한 어머니/아버지 대상에게 분노하지만 어머니 정동(affects)을 상징하는 스웨터를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보는 소설에서 밝히지 않았다. 왜 부모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는지, 고향에서 왜 고통스러웠는 지, 어머니의 정동을 그리워하면서 분노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으며, 아버지는 거의 언급이 없다.(하지만 한강 소설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아버지에 대한 특징적인 인상은 ‘폭력적’이다. 「여수의 사랑」의 폭력적인 아버지는 자녀를 억지로 끌고 바닷가에서 자살을 시도하며, 「철 길 흐르는 강」의 아버지는 잔인한 폭력으로 아내가 스스로 자살을 하게 한다. 이런 폭력적인 코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 주되어 정치 사회 권력의 다양한 층으로 이어져 한강의 소 설을 관통하는 큰 축을 담당한다.)
작가는 고통스런 마음의 응축된 에너지를 「내 여자의 열매」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후의 소설을 통해 그것을 분해하고 통합하는 또 다른 고통스런 과정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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