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한국명작소설 읽기(14) 한강, 채식주의자

education guide 2024. 10. 12. 00:50

1. 한강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다. 1993년 ‘문학과 사회’에서 시 ‘서울의 겨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가의 길을 걸었다. 사실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1993년에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외 시 4편을 발표하여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으나 이후 소설 쪽에 집중해서 시집은 한참 후인 2013년에야 나왔다.

 
대중적인 재미와 거리가 먼, 사람의 몸을 테마로 삼은 불편하고 파격적인 소설들을 쓴다. 대표작으로는 〈내 여자의 열매〉와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있다. 〈몽고반점〉은 《채식주의자》라는 연작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7년 ‘소년이 온다’로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 2018년 ‘채식주의자’로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부문)을 수상했다.

 

2024년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으로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그리고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처음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2. 채식주의자 줄거리

 

1) 채식주의자

 

겉보기엔 평범하다 못해 무미건조하지만, 고집이 세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으려는 성격인 '영혜' 는 마찬가지로 무미건조한 남자의 아내이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혜는 피가 뚝뚝 흐르는 생육을 먹는 끔찍한 꿈을 꾸게 되고, 고기를 아주 멀리하게 된다. 집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치우고, 남편에게는 "몸에서 고기 냄새가 난다" 며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영혜는 어릴 적 자신을 문 개가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묶여 끌려다니다가 거품을 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영혜는 그 개로 만든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었었다.

영혜의 꿈은 점점 '고기를 먹는 것' 에서 떠나, 누군가가 누군가를 때려서 살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고기를 거부하는 영혜는 사회적인 압박을 받으며 점점 눈에 띄는 행동을 싫어하는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고, 보다못한 남편이 그녀의 가족들을 불러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려고 하다가 그녀가 자해를 하게 만들고 만다. 이 사건으로 가족은 풍비박산이 나고 영혜는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병원에서는 어머니가 달여준 한약이나 고기마저 발악적으로 거부하고, 벤치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앉아있다가 새를 잡아다 그 피를 핥아 먹는 등 남편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남편은 영혜를 버리고 만다.

 

2) 몽고반점

 

주인공은 미디어 아트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려는 예술가이다. 집에서는 늘 힘 없는 모습이지만 자신의 카메라로 영상을 찍을 때만큼은 타인은 물론 본인도 이해 못하는 열정을 발휘한다. 그는 아내가 자신의 동생(영혜)을 씻기다가 그녀에게서 몽고반점을 봤다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없는 흥분에 빠진다.

거부할 수 없는 열망에 빠진 그는, 도덕적인 금기를 깨고 영혜를 불러 그녀의 누드에 꽃을 그려  촬영하고 싶다는 부탁을 한다. 영혜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를 수락한다. 그도 그럴게 영혜는 내심 식물적인 삶을 갈망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영혜의 몸에 꽃을 수놓고, 어린 시절이 지나면 사라질 게 당연한 몽고반점을 강조한 바디 페인팅을 그리며, 성욕을 초월한 예술적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동업자인 남성 'J' 를 불러 모델 일을 부탁하고, 그의 몸에도 꽃을 그려 영혜와 함께 찍도록 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영혜와 하나가되는 모습을 촬영하겠다' 는 그의 지나친 요구에 질색한 J는, 수치심에 받쳐 촬영 중 스튜디오를 떠난다. 가뜩이나 '그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다' 는 생각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동업자에게 부탁해 자신의 몸에도 꽃을 그린 뒤 영혜와 몸을 겹치게 된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하루를 보낸 주인공은 어느새 잠에 들었고, 깨어보니 처제의 언니인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이미 다 본 상황이었다. 남편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아내는 남편에게 혐오감을 갖는다.

그 이후에 영혜의 언니는 정신병자가 있다는 신고를 했다고 말하며, 남편을 경멸하는 말들을 퍼붓는다. 그 와중에 영혜는 창밖을 향해 사타구니를 활짝 벌린다.

 

3) 나무 불꽃

 

영혜의 언니는 남편과 결별한 상황이다.

영혜가 비 내리는 숲의 한 가운데서 며칠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언니는 영혜를 찾아간다. 영혜는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언니는 다른 환자들의 몰골을 보며 영혜를 보기 위해 지나간다. 영혜 역시 비쩍 마른 몰골로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언니의 부름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러다간 정말 죽는다고 영혜를 말리며 호소하는 언니를 두고, 그녀는 발악에 가까운 반발을 한다. 영혜는 이제 고기를 거부함은 물론이고, 채식마저 거부하며 햇빛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며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을 나무로서 여기면서 그 어떤 음식물의 섭취도 거부한다.

 

3. 1.  해설 (1) (황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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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고 ‘재미있다’고 반응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 재미는 쓴 맛일 것이다. 제목과 달리 이 소설은 채식을 예찬하는 소설이 아니다. 육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니 살육문화에 저항하며 희생되는 한 연약한 초식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 남편의 1인칭 화자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아내 영혜는 어떤 꿈을 꾼 후 한 밤중에 일어나 냉장고 속의 온갖 식재료를 정리하여 쓰레기로 내버린다. 이후 그녀는 일체의 고기가 없는 야채 중심의 식탁을 차리고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처형 집의 아파트 입주 집들이로 모인 가족 모임에서 영혜는 육식을 강요당한다. 영혜는 그간 좋아했던 굴무침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사정을 알던 장인이 호통을 친다. 처형은 야무지게 영혜를 나무한다. 장모는 온갖 육요리를 딸 앞으로 펼쳐놓으며 먹으라고 채근하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영혜 입 가까이 내민다. 그러자 영혜는 몸을 뒤로 젖히며 거부한다. 그 순간 장인은 딸의 뺨을 후려갈기고 사위와 아들로 하여금 영혜 팔을 붙잡게 하고는 탕수육을 영혜의 입으로 쑤셔 넣는다. 우리 인류에게 아주 익숙한 원시적 제의다. 아버지의 폭력은 마치 병자에게 행하는 치료 주술이자 사랑의 의무인 듯이 보인다. 이처럼 육식 문화의 이데올로기는 집단적이고 폭력이고 거룩하다.

 

아버지가 탕수육을 강제로 집어넣자 영혜는 ‘으르렁거리며’ 탕수육을 뱉어낸다. 몸을 웅크리 채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교자상에 놓인 과도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흥건한 핏물과 쓰러진 영해의 몸은 말한다. 난 싫어! 초식인간에겐 자해라는 방법 외엔 저항할 방법이 없는 걸까.

 

영혜는 일련의 꿈들을 꾼다. 소설 곳곳에 여섯 개의 끔찍한 꿈 이미지와 영혜의 독백이 삽화처럼 배치되어 있다. 어릴 적 기억과 신체적 경험의 이미지 조각들이 꿈의 자막에 상영되고 무기력한 독백이 배음처럼 들리는 방식으로 꿈 시리즈는 진행된다. 꿈의 서사는 꿈 꾼 이의 일기 기록처럼 보인다.

 

몸이 말한다. 영혜의 몸이 말한다. 트라우마는 그녀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꿈속의 음식들로부터 도망치다 붙잡혀 있는 듯 하고, 꿈속의 입맛이 마구 침을 흘리게 한다. 무섭게 말하자면 꿈속의 칼이 자기 손목을 그어버렸다. 어떤 이론이나 정신분석적 해석을 도입하여 해석하는 것은 문학작품 읽기의 방법으로 유쾌하지 않아 보이지만,그런 렌즈가 없어도 이러한 꿈 이미지들은 문자화할 수 없는 소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영혜에게 꿈과 현실은 구분되지 않는다. “설핏 의식이 나가자마자 꿈이야, 아니 꿈이라고도 할 수 없어.” 꿈 속에서 말한다.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

 

남편이 입원 중인 아내를 찾아갔을 때 영혜는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 근처엔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그녀는 환자복 상의를 벗어 무릎에 올려놓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앙상한 쇄골과 여윈 젖가슴, 연갈색 유두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의 붕대를 풀어버리고,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 입술은 루주가 마구 번진 듯 피에 젖어 있다.

 

단편 <채식주의자>의 이 엔딩은 극적인 반전이다. 게다가 우리에게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을 남긴다. 소설의 제목이 ‘채식주의자’이고, 영혜는 한사코 육식을 거부했는데 그녀가 동박새를 물어뜯었다면, 이 소설이 말하는 ‘육식 거부’와 ‘채식’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녀가 가슴을 드러내고 앉아있는 모습을 행위 예술로 읽는다면, 이빨에 물어뜯긴 ‘작은 동박새’를 영혜 자신으로 읽는다면 소설 이야기의 감도가 달라진다.

 

물어뜯는 이빨과 고기를 써는 칼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식당이나 정육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식탁과 가족이라는 핏줄 안에, 나의 말과 관계들 속에, 우리 문화와 조직들 안에, 국가와 역사 속 깊숙이까지 있다. 살육의 무기와 핏빛은 도처에서 일렁거린다. 내 몸과 내 속에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 멸종한다. 소설에 피맛이 난다.

 

3.2.  해설(2) , '한강 소설에 나타나는 폭력성의 이미지 연구' 참조

『채식주의자』에서 ‘영혜’는 중심인물임에도 의도적으로 목소리가 축 약되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다른 인물에게 초점을 둬 그녀의 모습 을 왜곡시킨다. 이는 영혜를 납작한 인물로 그리기 위함이 아니라 주변 부로 밀려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서술전략이다.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갑작스러운 채식을 중점으로 주변 인물의 몰이해, 욕망 그리고 정상성 세계의 위선을 다룬 작품이다. <채식주의 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 속 화자 (남편, 형부, 언니)는 영혜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작품에서 영혜의 몸은 유년 시절에서부터 경험한 폭력성이 축적된 공간으로 제시 된다. 하지만, 그 의미를 즉각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영혜에게 가해 진 가혹 행위를 치밀하게 숨기며 그 결과만을 환상적인 장면으로 보여주 기 때문이다. 그 전경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몸의 이미지는 그로테스크하 면서도 암시적이다. 1부 <채식주의자>의 서두에서 남편은 영혜의 외양 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 이면에는 위계 관계가 숨겨져 있다.

 

한강, 『채식주의자』, 창비, 2022, 8쪽.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 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과분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 남편은 영혜가 특별해 보이지 않 는 것을 중시한다. 이는 영혜가 자신의 단점들을 지적할 수 없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혜의 평범함은 남편의 위신을 적당히 채워주고 있으 며 그가 원하는 대로 가사노동도 ‘무리 없이’ 해낸다. 남편이 생각하는 영혜의 남다른 점이란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 는 남편이 바라던 영혜의 외양을 해체하는 시발점이 된다. 남편이 영혜 를 묘사하는 방식은 작품 초반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남성 중심의 권력 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영혜는 남편이 원하는 모습 을, 다시 표현하자면 ‘옷’을 몸으로부터 서서히 분리하기 시작한다. 그 시 작은 원래 추위를 잘 타던 영혜가 새벽임에도 옷을 얇게 입은 채 맨발로 우뚝 서 있는 장면이다. 이때 남편은 냉장고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영혜의 얼굴을 낯설다고 표현한다.

 

여기서 얼굴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존재를 ‘낯설게’,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한다. 얼굴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드러나는 곳이기에 여기 가 낯설다는 건 그 사람 자체가 낯설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이는 영혜 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영혜가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한 것도 이 얼굴 때 문이다. 이 작품의 중심사건은 영혜의 채식이다. 그 계기를 강렬한 이미 지로 제시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얼굴이다. 이후 영혜는 자신이 채 식을 넘어서 거식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얼굴에 대한 꿈’을 꾸기 때 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서두에서 남편이 영혜의 온몸을 전체적으로 훑은 것과 달리 이후에 영혜의 몸은 부분적으로 제시된다. 영혜가 자신의 몸 을 분리해서 인식하는 건 고통, 그 너머의 폭력성과 연관이 있다.

 

 

한강, 위의 책, 2022, 20-21쪽.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 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 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 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이는 영혜가 꾼 꿈의 한 장면이다. 이탤릭체로 혼란스럽게 표현되고 있다.66) 영혜는 어두운 숲속에 있던 헛간에서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을 마 주한다. 그 전날 아침 영혜는 얼어붙은 고기를 썰다가 도마가 밀리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베고 식칼의 이도 나가는 적이 있었다. 이에 불고기에 칼 조각이 들어갔는데, 남편이 이를 발견하자 죽을 뻔했다고 소리 지른 다. 이때 영혜는 자신이 누군가를 헤칠 수 있다는 감각을 느끼면서 오히 려 침착해진다. 직후에 제시된 꿈은 영혜가 새로운 위치에서 자신을 바 라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위의 글에서 “수없이 봤던 얼굴”을 낯설게 느낀다. 여기서 얼굴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 건 자신의 몸에 묻은 피, 고깃덩어리를 씹은 감각, 번쩍이는 눈, 피웅덩이이다. 또한, 고깃덩어 리를 ‘이’가 아닌 ‘이빨’로 씹는다고 강하게 표현하는데 피웅덩이에 반사 된 자신의 얼굴을 맹수처럼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얼굴은 영혜가 육식의 폭력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며 영혜를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에 영혜는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에 짓눌리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 해 채식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영혜는 자신을 괴롭히는 꿈이 무엇인 지 알고자 했으며 몸은 “무용수처럼, 종내 환자처럼 뼈대만 남긴 채” 말라간다. 이를 통해 자신의 몸을 재인식하며 날카로운 부분과 둥근 부분 이 대비된다.

 

영혜는 처음에 꾼 꿈의 연상작용으로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꾼다. 이 꿈들은 잔상처럼 지난 꿈들을 내포하고 있다. 세 개의 인용문에서도 영 혜의 진술은 이탤릭체로 서술되고 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이 빠르게 몰아치며, 영혜는 꿈에서 ‘누군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계속해서 마주 한다. 자신은 그 주체가 되기도 대상이 되기도 한다. 꿈이 반복되면서 살해를 한 주체와 대상의 경계는 모호해지지만 “오싹하고, 더럽고, 끔찍하 고 잔인한 느낌”은 남는다. 이는 누군가 도마에 칼질을 하는 것을 보는 게 무서웠다는 고백과 맞닿는데 영혜가 도마에서 얼어붙은 고기를 자르 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남편의 이상향대로, 더 나아가 “육식이 본 능인” 사회의 요청대로 삼겹살이나 쇠고기로 요리를 만들었지만, 도마에 서 칼질할 때마다 공포와 끔찍한 느낌을 재차 경험한 것이다.

 

젖가슴은 영혜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무기가 될 수 없는 곳이다. ‘손, 발, 이빨, 세치 혀, 시선’ 같이 외부에서 영혜에게 폭력성을 가한 신체는 영혜에게도 존재한다. 영혜는 누군가를 죽이고, 죽는 이미지 와 동물들을 죽이는 장면의 교차에서 자신의 몸도 그렇게 폭력적으로 변 할지 모른다고 여긴다. 가슴만이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위안을 줌으로써 전자의 이미지들과 대비 된다.

 

 

4. 비쥬얼씽킹으로 표현해 본 채식주의자에 대한 감상

 

 

 5. 채식주의자 창작 후 작가의 말

1.

 

10년 전의 이른 봄,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소설을 썼다. 한 여자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식물이 되고, 함께 살던 남자는 그녀를 화분에 심는 이야기였다. 언젠가 그 변주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10년 전의 내가 짐작했던 것과는 퍽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이 연작소설이 출발한 것은 그곳에서였다.
2002년 겨울부터 2005년 여름까지 이 세 편의 중편소설을 썼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해지면 그중 어느 것도 아닌 다른 이야기–––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담기는 장편소설이다. 이제 제자리에 차례를 맞추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길었던 매듭이 지어지는 느낌이다.   

 2.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키가 크고 눈이 맑은 여학생 Y가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 인쇄를 해오면 여백을 이용해 고치고, 그것을 다시 타이핑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의 반복은 인내를 요했다.

하지만 그나마 손으로 쓸 수 있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백지 한 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성인식컴퓨터? 손끝을 대면 전기자극으로 작동되는 키보드를 주문 제작하는 일? 눈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버렸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렇게 2년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뒤였다. ‘「진기명기」 같은 프로에 나가도 되겠다’고 동생이 말할 만큼 익숙해지자 혼자 힘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 「나무 불꽃」은 그렇게 썼다.
다시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이 글은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열 손가락으로 두드려 쓰고 있다. 만의 하나 다시 손을 앓게 되더라도 예전처럼 부대끼지는 않을 것이다. 단련된다는 것, 감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3.

 

어리석고 캄캄했던 어느날에,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가로수 밑동에 손을 짚은 적이 있다. 축축한 나무껍질의 감촉이 차가운 불처럼 손바닥을 태웠다. 가슴이 얼음처럼, 수없는 금을 그으며 갈라졌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이 만났다는 것을, 이제 손을 떼고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도 그 순간 부인할 길이 없었다.

이젠 여학생이 아닐 Y에게,
병원을 취재할 수 있게 해준 분들께,
비디오 작업의 세부를 가르쳐준 분들께,

도움을 베풀어준 분들, 

굳건히 지켜보아준 이들께,
창비 편집부의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07년 가을

 韓 江


6. 노벨문학상의 숨은 공로자, 데보라 스미스

 

한강이 세계 최고 문학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언어 장벽을 허물게 해준 훌륭한 번역가를 만난 것도 한몫을 했다. 지난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할 때, 바로 옆에 있는 여성,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였다. 당시 28살에 불과했던 스미스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어를 배운 지 3년 만에 소설 채식주의자의 매력에 빠져 번역은 물론 출판사 접촉과 홍보까지 도맡은 걸로 알려졌다.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뒤져가며 한국어를 공부한 스미스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 한강처럼 시적이고 관념적인 문체를 구사하는 작품과 만났을 때 시너지를 냈다. 특히 한국 고유의 단어를 풀어쓰기보다는 그대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 만화를 코리안 망가, 이런 식으로 다른 문화에서 파생된 걸로 쓰는 데 반대한다면서, 한강 씨의 또 다른 작품 '소년이 온다' 번역에도 형, 언니, 이런 단어를 그대로 썼다고 한다. 이런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한강 역시 "작품에 헌신하는 아주 문학적인 사람"이라며 "좋은 번역자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동안 아시아의 변방으로 자리했던 한국 작품을 이렇게 노벨문학상의 문턱까지 넘어선 데는 그 누구보다 작가의 세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민했던 번역가의 노력도 숨어 있었다. 

 

7. 더 이해해 보고 싶다면.

TV 책 - 작가 한강을 만나다 ❘ KBS

유튜브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시청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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