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내면과 예술
모든 예술은 인간의 내면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일한 갈래와 소재여도 예술을 구현해 낼 이의 내면에 따라 대상이 달리 인식되기도 하고, 동일한 예술작품을 대하더라도 마주하는 이의 내적 세계에 따라 면모가 달리 인식되기도 합니다. 여기 한 여승의 춤이 펼쳐집니다. 그녀가 입은 고깔, 두 볼에 흐는 빛, 까만 눈동자. 그리고 이를 마주한 시인. 그리고 그의 시를 마주한 우리. 조지훈의‘승무’는 여러 내면이 포개져 나비처럼 흔들립니다.
2. 조지훈, 승무
얇은 사紗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1939. 12).출전 : 《청록집》(1946). 첫 발표는 《문장》
3. 이숭원, 해설
이 시는 어떤 젊은 여승이 승무를 추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승무를 추는 여승이 젊다는 것은 “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라든가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 “까만 눈동자“, “복사꽃 고운뺨” 등의 시구에서 알 수 있다. ‘두 볼에 흐르는 빛’이나 ‘녹는 황촉불’을 눈물의 심상으로 해석한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시는 승무를 추는 여승의 비애를 다룬 작품이 된다. 이 시는 서러움을 머금은 승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지 여승의 비애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아니다. 그냥 아름다운 춤이 아니라 슬픔을 머금은 아름다운 춤, 번뇌를 포함한 아름다운 춤, 젊은 여인의 관능과 신앙과의 갈등이 배어 있는 춤, 그러한 춤의 이중성에 이 시의 핵심이 있다.
춤의 동작을 묘사하던 화자의 발화는 6연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7연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에서 이 시의 핵심을 단번에 드러내 버린다. 이 시의 주제를 담고 있는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시구를 이해하려면 우선 6연의 ‘별빛’의 의미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6연은 5연에서 소매를 떨치고 발길을 돌려 가며 춤추던 동작이 잠시 정지하는 순간의 묘사다. 까만 눈동자를 살며시 들어 먼 하늘 별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응시하는 동작을 나타냈다. ‘별빛’은 여승이 염원하는 궁극의 경지를 표상할 것이다. 먼 하늘 한 개의 별빛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한다는 것은 그 응시의 대상이 예사롭지 않음을 나타낸다. 여승은 수행과 춤으로도 세속의 번뇌가 떨쳐지지 않아 괴로워하며 다시 한번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눈을 모으며 자신의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다짐하는 것이다.
그렇게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발원을 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뺨에 눈물이 맺힌다. 그런데 그 뺨은 싱싱하게 젊은 여인의 뺨, 즉 ‘복사꽃 고운 뺨’으로 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뺨에 눈물이 맺힌다는 사실 자체가 이중적이다. 그것이 바로 서러움을 내포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눈물도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번뇌에서 벗어나려는 단호한 의지와, 그러한 발원에도 불구하고 발끝을 잡아채는 집요한 번뇌 사이의 갈등을 나타낸다. 번뇌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구심이 들 때 눈물이 맺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눈물이 비치는 모습을 보고 화자가 한 발언이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이다. 아무리 세상의 일에 시달린다고 해도 당신의 번뇌는 별빛처럼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뜻을 시인은 담아낸 것이다. 그다음 8연에서 춤은 다시 활발한 몸놀림으로 이어지면서 거룩한 합장과 같은 손동작으로 변화한다. 여기서 비로소 종교적 전심傳心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실현하려는 여승의 마음이 표현된다.
그리고 9연에서 깊은 밤 승무를 추는 정경이 다시 제시되면서 시가 종결된다. 이렇게 볼 때 다른 연이 춤의 동작을 묘사하고 있음에 비해 7연은 춤의 한 장면에 대한 시인의 연상과 해석을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선 한 개 별빛에 시선을 고정시킨 여승의 검은 눈동자를 보고 거기서 다시 눈물이 비치는 장면을 연상하였다. 그 눈물은 세속의 번뇌를 다 떨치지 못해서 흘러나온 것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뺨에 아롱지는 눈물방울도 아름답고 여승의 내면에 담긴 번뇌를 떨치려는 의지도 아름답다. 그래서 당신의 뺨에 눈물을 맺히게 할 정도로 당신을 괴롭히는 세속의 번뇌도 별빛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시가 수미일관하게 시상의 축으로 삼고 있는 아름다움의 이중성이다. 세사에 시달리는 여승의 ‘번뇌’도 슬픔을 내포한 아름다움 즉 ‘별빛’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시의 주제를 ‘인간 고뇌의 종교적 승화’라든가 ‘세속적인 번뇌의 초극’이라고 보는 것은 이 시구를 불교적인 관념으로 확대 해석한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시의 불교적 색채는 8연의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에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불교적인 주제로 이 시를 해석하게 된 데에는 한 편의 시에서 무언가 오묘한 진리라든가 그럴듯한 주제 의식을 찾아내려는 심리가 작용한 듯하다. 그러나 한 편의 시를 종교적 담론으로 다루기보다는 독특하게 변형된 정서적 언술로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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