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지난 2월 1일 지역과 지역대학을 함께 살리겠다는 목적 아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을 발표했다. 그동안 중앙부처가 담당하던 대학지원을 지역주도로 전환하여 관련 예산・집행 권한을 지자체에 줌으로써 지역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단순히 권한 위임에 대한 내용만이 존재할 뿐, 소멸위기에 처한 지역과 대학을 살리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대책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지역 위기가, 대학지원의 권한과 책임을 지자체로 이양하기만 하면 해소되는 것일까. 정부가 지역 위기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책임을 회피하며 관찰자로만 남겠다는 뜻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의 지역소멸과 지역대학위기에는 합계출산율 0.78명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초저출산 현상과 철저히 서열화 된 대학체제 문제가 핵심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끝없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는 여러 자원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 지난 해 4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초저출산과 지역불균형의 관계에 대한 실태분석’ 보고서를 보면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지역에 청년인구가 집중되고 있으나 수도권 지역에서는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에 따라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여 수도권의 저출산 심화가 우리나라 전체의 저출산을 가속화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저출산 대응을 위해 청년들이 지방에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지방의 교육 인프라와 일자리를 확충해야함을 강조한다. 결국 지역소멸과 지역대학위기를 극복하려면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제반 인프라들을 여러 지역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해 가는 안이 필요하다. 수도권에 대한 사회적 선호도가 지금처럼 과한 상태에서는 지역에 대한 획기적 지원과 차별해소 없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RISE사업은 ‘지역과 대학의 동반 성장을 추진하는 체계’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지역대학을 살릴 수 있는 획기적 재정지원이 담보되어 있지 않다. 또한 지역 인프라의 차별적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정책지원이 담겨 있지도 않다. 여러 수사(修辭)가 가득하지만, ‘지역의 위기는 지역의 힘으로 극복하자.’라는 메시지가 어렵지 않게 읽힌다. 지역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지자체의 책임만 요구하는 모순된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정부는 지역과 지역대학을 살릴 수 있는 책임 있고 실제적인 정책을 단기·중기·장기에 걸쳐 내놓을 필요가 있다. 특히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이다. 지역의 자생과 부흥을 위해서는 지식경쟁력을 갖춘 대학이 불가결한 요소다. 미국의 ‘피츠버그’, 스웨덴의 ‘말뫼’와 같이 기울어져 가던 도시가 다시금 역동하는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수한 대학이 존재한다. 철저히 수도권 중심으로 서열화 된 대학체제를 극복하고, 지역이 특정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려면, 대한민국 곳곳에도 우수한 연구중심대학을 육성하는 정책지원을 펼쳐야 한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실효성 높은 산·학·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RISE사업은 그때서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RISE사업과 더불어 제시한 글로컬 대학안도 꿈에 비해 실속이 부족하다. 그 정도 규모의 예산으로는 연구중심대학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도 없고, 수도권 중심의 견고한 대학서열에 변화를 일으킬 수도 없으며, 지금과 같은 지역인재의 유출을 막을 재간도 없다. 심지어 성공 모델로 제시한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 연합대학,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시스템 사례 등은 황망하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 지역대학과 달리, 이미 최상의 조건 속에 있던 대학과 연구기관을 통합·연계한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 연합대학,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을 혁신사례로 논한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으며, 연구중심대학-교육중심대학-직업중심대학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시스템은 국가차원으로 접근해야할 대학체제 개선안이지 지자체의 역량만으로 시도해 볼 차원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제라도 지자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지역 생존을 위한 과감한 투자와 실행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문제의 본질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 고등교육비 GDP 1% 이상을 한시 빨리 확보하고, 마련된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를 살릴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투자하는 일이 시급하다. RISE사업과 글로컬 대학안이 지방소멸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체질을 개선할 수는 없다. 겨우 언 발에 누는 오줌에 불과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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