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한민국 교육정책

선다형 상대평가를 극복할 수 있는 힘, IB

education guide 2024. 8. 15. 17:23

* 2022-11-29 국회토론회 토론문을 수정한 글

 

1. 우물에 떨어진 독 한 방울, 상대평가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 등 교육선진국 어디에도 내신 상대평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상대평가가 갖는 교육적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실제 상대평가제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을 오랜 기간 왜곡시켜 왔다. 평가란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돕고 교수·학습 방법을 개선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임에도 상대평가제는 철저히 경쟁을 유발하는 도구로, 자극적 서열화의 기준으로,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척도로 작동했다. 학생들의 배움을 촉진하고 성장을 도와 ‘교육과정-수업-평가’로 교육의 완성을 이뤄야 할 ‘평가’가 오히려 교육과정과 수업 전반을 변질시키는 대한민국 교육의 병폐로 자리 잡았다. 마치 우물에 떨어진 독 한 방울이 그 우물 전체를 마실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처럼, 상대평가제 하나가 대한민국 교육 전반을 왜곡하며 독극물처럼 퍼져있는 상황이다.

 

여러 글에서 논한 바처럼,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우리 학생들을 키워내자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의 성취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철저한 비교 속에서 성적이 산출되는 상대평가제는 이미 교실을 사활을 건 전장으로 만들어 놓아서, ‘포용성’을 가르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창의성 교육을 위해서는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는 교육환경이 중요함을 강조했는데, 대한민국 상대평가구조는 문제 하나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여 사실상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창의성’ 교육을 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로 인해 수업도 요약·정리·암기와 문제풀이의 연속이다.

 

2. 새로운 평가의 요건     

 

주어진 다섯 개의 선지 중 하나의 정답을 골라내는 방식으로는 창의력도 비판력도, 수준 높은 문제해결력도 키워낼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학생들의 주체적이고 다채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평가로 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평가는 다른 학생과의 철저한 비교로 줄을 세워 성적을 산출해 내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취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세우고, 학생들 개개인의 생각을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사고전개과정을 살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선다형평가를 극복해야하고, 다음으로 상대평가를 극복해야만 한다. 문제는 선다형 상대평가제과 결별하는 순간 채점 논란과 ‘공정성’ 시비에 다다른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하기란 쉽지 않고, 열정과 헌신으로 똘똘 뭉친 최고의 교사가 최선을 다해 평가를 설계하고 철저한 기준 아래 채점을 한다 해도, 결국 받게 될 것은 감사 전화가 아니라 민원 전화일 확률이 높다. 그런즉 새로운 평가는 채점의 신뢰성을 확보하되, 교사 개개인의 헌신과 노력에 맡겨두는 것이 아닌 신뢰받는 시스템을 갖춰야만 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3. 그래서, IB     

 

가장 갖추기 어려운 요건은 3번이다. 채점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문제지만, 신뢰라는 것이 단번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 속에 축적되는 것이기에, 본질적으로 상당한 시간을 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급한 변화 앞에서 시간은 막대한 자원이며, 늦어질수록 우리 학생들은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잃는다. IB는 긴 시간동안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축적했고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인 ‘공정성’ 논란을 뚫고 갈 수 있는 힘을 내재했다. 그것만으로도 IB는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각계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비용이다. 이를 살펴보자.

(이상의 자료들은 2019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IB와 관련해 4차례의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정리한 것이다. 현재의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고, 조사 당시 양해각서가 체결 전이어서 한글 번역 비용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한 학교 당 5년간 약 1억 5천의 비용을 소모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금액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교육에 소모되는 비용이 공식적으로만 23.4조원이다. 이 엄청난 금액의 대부분이 문제풀이 학습을 하는데 소비됨을 감안한다면 관련 액수가 개선비용으로 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치판단의 영역이므로 토론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한편 IB는 귀족교육에 대한 우려가 있다. 오늘 토론의 발제자 이혜정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진정 귀족교육, 엘리트교육을 없애고 싶다면 이런 교육을 무상 공교육에 도입하면 되는 것 아닌가? 아동도 줄어드니 예산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1%가 받는 교육을 99%도 받게 하는 것이 공교육이 갈 길 아닌가?

 

옳은 말이고 든든한 말이다. 하지만 귀족 교육에 대한 우려 지점은 다른 곳에 있다. 과연 어떤 학교가 IB 대상학교로 선정 될 가능성이 높을까 하는 것이다. 특히 IBDP에서. 대구의 수많은 학교들 중 굳이 대구외고가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IB를 향한 보수교육감과 진보교육감의 접근방식 차이가 크다.

 

4. 나아가, KB     

 

 IB의 교육철학, 교육과정, 평가체제는 훌륭하지만 우리가 종내 가야할 길은 KB(한국형 바칼로레아)라 하겠다. IB 도입 학교 운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그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안은 정부가 한시 빨리 나서서 국가차원의 서술형 평가체제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발제자 역시 IB를 일부 시범학교나 연구학교에 도입하여 우리 교사들로 하여금 채점 전문성을 축적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수능과 내신 패러다임을 선진화하는 한국형 바칼로레아 체제를 구축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목적인 KB구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몇 개까지 IB 인증학교를 수립할 것이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입해야할까? 이런 논의가 남는다. IB 예찬을 넘어,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구체적인 설계도를 그릴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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