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0개 만들기, 대학 서열화 해소를 위한 묘수
대한민국 교육문제는 결국 대학체제로 귀결된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는 온 국민이 앓는 입시 신열을 극복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인 것처럼 한탄만 하나, 대한민국 교육을 위해 현장에서 끝없이 고민해 온 이들은 다행이도 실현가능한 안들을 상당히 진전시켜 놓았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완 발전할 것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내용은 이와 관련한 것으로 2022년 12월, 국회토론회 발제글이다. 우리 교육이 취해야할 대학체제 개선안을 한 판의 바둑으로 빗대어 논했다. 비교적 분량이 있지만 대한민국 교육에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라면 일독해 볼 만하다.(최근 정치 이슈인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1. 독점: 갑부 85명과 수도권
국제 구호 단체 옥스팜은 2014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 연례회의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세계적인 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옥스팜은 세계적인 갑부 85명이 가진 부가 세계 인구의 하위 50퍼센트가 차지하는 30억 명의 부와 맞먹는다고 지적했는데, 부의 격차는 일 년 뒤 훨씬 심화되어 갑부 80명이면 족했다. 그리고 그 수는 2015년에는 62명, 2016년에는 8명으로 줄었다.
대한민국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독차지하고 있는 양상도 유사하다. 인구 측면에서 수도권 집중도는 50.4%를 넘었고(2021년 기준), 경제 측면에서 지역내총생산(GRDP)의 수도권 비율은 52.53%까지 치솟았다(2020년 기준). 교육 측면에서는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의 80% 가량이 서울에 위치하며 우수한 교육 인프라를 전유한다. 수도권은 이제 대한민국 불평등의 기제가 되었다.
특히 교육 측면에서 수도권 대학들이 독점적 위상을 갖는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지리적 이점, 누적된 인맥과 명성 등 여러 이유 속에서도 교육여건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대학의 총교육비는 양적 교육 인프라를 구축함에 있어 중요한 작용한다. <표1>을 보면 우월한 예산규모를 바탕으로 교육투자 여건이 뛰어난 대학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개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투입되는 1인당 교육비가 높은 대학들 역시 소위 SKY를 필두로 한 수도권 대학에 쏠려 있다(<표2>).
정부의 재정 지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박용진 국회의원실과 공동으로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2018년 대학지원사업 대학별 지원액’을 분석해 보면, 2018년 BK21+사업비(총금액 2,687억 원)를 지원받은 67개 대학 중 지원액 상위 10개 대학이 65.9%(1,771억 원)의 지원액을 차지하고, 서울소재 18개 대학이 지원액의 53.2%를 차지하는 등 대학과 지역에 따른 편중이 심한 것으로 나타난다(<표3>).
이처럼 수도권의 질 높은 교육 여건들을 확인하면 거주지가 먼 지방의 학생이라 할지라도 수도권 대학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여기에 노동시장 여건까지 결합되면 선택의 합리성은 더욱 강화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09년 8월~2010년 2월 사이에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2011년 평균 급여와 취업률을 조사해 발표했는데(<표4>). 상위 10개 대학 졸업자의 평균 급여는 월 269만 5,000원, 수도권 대학은 월 208만 2,000원, 지방대학은 월 196만 7,000원이었다. 명문대에서 수도권 4년제로, 그리고 지방 4년제로 갈수록 낮아지며, 취업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수도권 명문대가 가진 인적 네트워크, 후광효과, 서울의 사회·문화 인프라까지 고려한다면 수도권 대학을 택하는 것이 개인적 차원에서는 합리적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국가적 차원이다. 수도권 진입을 위한 23.4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 대학서열화에 발맞춘 줄 세우기 평가와 문제풀이식 교육, 여기서 비롯되는 공교육 붕괴,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극단적 시도를 생각할 만큼 극심한 경쟁고통, 부모의 양육 부담과 낮은 출산율, 지역 인재 유출로 인한 지역사회 소멸위기까지. 수도권 쏠림은 이제 국가의 실존과 관계되는 직접적 문제가 되어 버렸다. 득보다 실이 큰 현재의 독점적 형태를 방치할 수도 없다.
* 오스트리아의 인구학자 볼프강 러츠는 2006년 세계 145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인구밀도가 출산율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글에서 10개 대학은 2013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 순위에 따라 선정되었다. 흔히 이야기되는 서울 안 명문대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에 카이스트와 포스텍이 포함된 것이다.
2. 자충수가 아닌 묘수: 지방대학
이러한 상황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각한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변의 경제 법칙이 초래한 결과가 아니라, 정책과 정치가 초래한 결과다. (중략) 따라서 다른 정책이 시행되면 전혀 다른 결과, 예컨대 경제적 성과가 개선되고, 불평등 수준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수도권의 교육 인프라 독점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도 정책과 정치가 초래한 결과이며, 결을 달리하는 정책을 수립·시행함으로써 개선할 수 있다. 해결방안은 논리적으로 명료하다. 지방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수도권 대학 못지않게 합리적 선택이 되도록 정책을 펼쳐가는 것이다. 이는 현 정부의 국정목표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와 국정과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와도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구호와 달리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자충수에 가까웠다. ‘반도체 인재 양성 방안’ 정책의 수혜자는 철저히 수도권이었고, 피해자는 지방대학이 되었다. ‘교원확보율’만 충족하면 증원이 허용되도록 제도를 변경하고, 계약학과의 기존 규제를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계약정원제를 도입하여 쉽게 증원할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것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수만큼 지방대학에 진학할 학생이 준다는 측면에서, 사실상 제로섬 형태를 지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방안」 수립 과정에서 반도체 관련 학과 신·증설(정원 증원)에 대해 ’22.6월 전국의 대학 중 총 40교를 대상으로 수요 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도권은 14개교에서 1266명을 늘리겠다고 한 반면 지방대는 절반 수준인 13개교 611명에 그침으로써 증원의 수혜자가 누가 일지 예상하게 했다.
다만 정부의 정책은 자충수였으나, ‘반도체 인재 양성’ 자체는 묘수의 가능성을 상당 부분 내포하고 있다. <표4>를 보면 4곳의 반도체 학과는 모두 충원율 100%를 보이고 있고, 특히 대기업과 연계된 3곳의 대학은 무려 10:1을 뛰어넘는 높은 경쟁률을 나타낸다. 충분한 재정지원과 양질의 노동시장 취업 보장이 갖는 효과 때문이다.
해당 사안을 역으로 접근하면 반도체 인재양성 정책을 지방대학 중심으로 편성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지닐지 타당성을 예측할 수 있다. 계약학과와 같은 유망한 반도체학과를 지방대의 특정 경쟁력이 되도록 정책을 구상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가겠느냐고 묻는 이도 있겠지만, 학문적 조건과 노동시장 조건이 구비될 경우 사람들은 단순히 지방대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카이스트, 포스텍, 최근 한국에너지공대 모두 수도권에서 떨어져 있지만 높은 선호도를 보이는 까닭이다. 반도체 정책은 국가의 대대적인 투자와 노동시장의 요청이 있는 영역이므로 계약학과, 특성화 대학 등을 지방대학들에 우선 배치하는 일은 현 정부가 내세운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그리고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위한 묘수가 될 수 있다.
3. 대학체제 개선의 성공 포석: 평등성 + 탁월성
결국 수도권으로 몰려갈 필요 없이 지방대학 진학이 합리적 선택이 되게 하려면, 각 지방대학이 특정 경쟁력을 갖추도록 정책 지원을 펼쳐야 한다. 반도체 학과는 작은 예시일 뿐이다. 실제 정책은 경쟁력과 공공성 함께 확보하는 종합적 대학체제 개선안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관련된 포석은 상당 부분 발전해 왔는데, 18년 전 「국공립네트워크」정진상의 안으로부터 반상진의 「대학연합체제」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상생네트워크」안 등을 거쳐 최근 김종영의 「서울대 10개 만들기」까지 지속적 진전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표5>).
모든 안들은 장점과 단점을 동반하지만, 공유된 지향점은 수도권 쏠림을 해체한다는 데 있다. 학점교류제와 공동학위제를 통해 교육여건과 학위 경쟁력을 공유함으로써 독점을 무마하고, 공동입학제를 활용해 서열화와 희소성을 극복함으로써 기회구조를 폭넓게 구축하고자 했다.
다만 이러한 안들의 뚜렷한 한계는 동가홍상(同價紅裳)에 있다. 대학의 공공성·평등성은 확보되지만 같은 값이라면 서울(수도권)이 나을 따름이다. 지방으로 가야할 뚜렷한 유인책이 없다면 온전한 안이 되기 어렵다. 이에 김종영은 그의 안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평등성을 넘어 각 지역의 대학들이 갖춰야 할 탁월성에 주목한다. 지식 경쟁력, 그의 표현을 따르면 창조권력이다. 지금부터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살펴보자.
4. 대마불사(大馬不死): 서울대 10개 만들기
평등성을 넘어 탁월성을 갖추기 위해 강조하는 것은 연구중심대학이다. 구조조정과 예산지원을 통해 규모의 학문을 구축하고, 거점국립대학들의 교육·연구역량을 높여 해당 지역의 새로운 산업을 추동케 하는 엔진으로 작동케 하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각 대학마다 특화된 연구 영역을 갖추어 수도권으로의 쏠림이 불필요하게 한다. 나아가 인서울/지방대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대학 이름을 ‘서울대’ 또는 ‘한국대’로 공유한다.
이러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기본적으로 캘리포니아 대학체제(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UC System)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공립대학이면서 세계적인 대학체제를 갖추고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는 공공성, 접근성, 기회균등을 확보하면서도 탁월한 대학체제를 이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서열은 연구중심대학-교육중심대학-직업중심대학 순으로 되어 있는데,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도 10개의 연구중심대학(UC System)과 23개의 교육중심대학(California State University System, CSU System), 116개의 직업중심대학(California Community College, CCC System)의 3중 구조를 갖는다.
UC 시스템은 10개 대학, 즉 UC 버클리, UCLA, UC 샌프란시스코, UC 샌디에이고, UC 산타바바라, UC 어바인, UC 데이비스, UC 산타크루즈, UC 리버사이드, UC 머시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캘리포니아 전역에 분포함으로써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을 동시에 막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대학의 수도권 독점과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캘리포니아 대학체제의 설계자들은 2년제 직업중심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UC나 CSU로 대대적인 편입을 할 수 있도록 구축해 놓았다. 2022년 기준으로 UC 대학에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 중 29%가 편입했으며 또한 2019년까지 CSU 대학 졸업생의 51%가 커뮤니티 칼리지 편입생에 해당할 만큼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는 병목을 막을 장치가 구조적으로 잘 설계되어 있다. 다만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4년제 연구중심대학 10개로 이루어진 UC 시스템만을 모델로 삼는데, 캘리포니아 3중 체제는 모두 공립이고 한국 대학은 사립대가 75% 이상을 차지하므로 구조적으로 3중 체제 전부를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권역별 편입체제를 장기적인 설계와 구조개혁을 통해 발전적으로 구축해 간다면, 지방대학의 자생력과 공공성을 높이는 효과적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캘리포니아 대학을 통해서 규모의 학문이 갖는 중요성과 이를 위한 구조조정의 필연성도 확인할 수 있다.
<표8>과 <표9>를 비교하면 캘리포니아 대학체제의 사회학과 교수진 수는 20~30명 내외로, 9개 거점국립대의 사회학과 교수진 5~9명보다 3~6배 정도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중심대학이 되려면 학과에 우수한 교수가 많아야 하므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거점국립대학의 구조조정을 통해 학과별, 단과대별 통합 등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가령 충남대 사회학과 6명과 충북대 사회학과 5명을 통합하면 전체 11명이 되어 단숨에 학과의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추가 교수 증원 등을 통해 연구중심학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는 것이다. 소규모 학문자본과 지리적인 위치 등을 고려하면 서울에 위치한 기존의 학과들과도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컨트롤 타워(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의 주도하에 학과의 규모를 키우는 일이 강하게 이뤄져야하며 대학통합네트워크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하기 위해 거점국립대학들을 통폐합하는 수준까지 고려해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조한다.
구조조정과 함께 고려할 것은 특성화다. 그 예로 UC 샌프란시스코를 들고 있다. 이 대학은 의대 중심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 의학과 생명공학 계열이 우수한 대학인데,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회학과, 사학과, 물리학과, 수학과의 교수진은 상당히 적지만, 의학과 생명과학 분야에는 집중 투자를 한다. 일종의 특성화대학으로 의학과 생명공학을 특성화하여 세계 최고 대학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생명공학 회사들과 산학협력을 통해 생명공학의 전설인 제네텍이 1976년 세워졌고, 뒤이어 수많은 생명공학 회사들도 설립됐다.
지역거점국립대도 이처럼 특화된 탁월함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글의 앞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지방대학을 택하더라도 최선의 선택이 되게 하는 길이다. 예로 제시하고 있는 충북대 특화 방안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데, 오송생명과학단지와 가까운 충북대를 UC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특화하고, 경상대학교는 우주항공산업과 관련하여, 부산대학교는 조선산업과 해양산업과 연계하여 분과 학문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에 국가의 혁신도시 종합발전계획 등과 연계하여 경북대학교는 미래교통산업을, 전남대학교는 미래에너지산업을 특정 연구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는 방안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산이다. 지방대 9개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다음과 같이 예산안을 도출한다. 먼저 서울대의 1년 예산을 분석해 기준점을 세웠다. 다음으로 지방거점국립대학들의 예산을 분석해 서울대와 해당 대학들이 받는 정부 지원금의 격차를 분석했다. 이후 도출된 격차만큼의 예산을 꾸준히 지원해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토대로 삼았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20년 기준 서울대 예산 중 교비예산은 총 8,634억 원, 산학협력단 예산은 총 6,760억 원으로 총예산 1조 5,394억 원이었다. 연세대·고려대가 서울대와 비교할 때 등록금 수입 비중이 높은 것과 달리 서울대는 산학협력단 예산이 연세대·고려대보다 2,700억 원 가량 많다. 이를 통해 서울대가 연세대보다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1년 예산이 1조 원 이상인 대학은 SKY가 유일하다. SKY의 뒤를 잇는 성균관대는 2020년 기준 총예산이 8,949억 원, 한양대는 8,555억 원, 경희대는 6,561억 원, 중앙대는 5,282억 원이었다. 대학서열의 차이는 상당 부분 예산 차이임을 알 수 있다
9개의 지방거점국립대의 예산은 <표11>과 같다. 서울대가 2020년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4,866억 원인데, 이 지원액은 거점국립대 전체 예산의 평균보다 많았다. 발안자는 한국 정부가 구조적으로 철저하게 수십 년 동안 서울대 중심의 예산을 편성했고 이것은 병목사회 또는 독점 사회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정부가 특정 지역의 특정 대학을 전폭적으로 밀어줌으로써 사회 불평등을 대대적으로 확대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나머지 거점국립대 9개가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2020년 기준 평균 1,265억 원이고 서울대와 이들이 받는 지원금의 격차는 평균 3,601억 원이다. 그러므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정부가 지방거점국립대에 3,600억 원씩을 투자할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면 10년 안에 연고대 수준의 대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몇 개의 대학은 8,000~9,000억원대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고 대학 인프라에도 투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수한 교수진과 연구진의 영입으로 산학협력단 예산을 증가시켜 1조 원대의 대학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10개의 서울대가 만들어진다 해도 입학 정원은 겨우 3만5천명 남짓이다. 수도권 쏠림에 대한 유의미한 해소가 될 수 있는가? 그동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우려와 지적이기도하다. 그래서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은 처음부터 9개의 지역거점국립대와 12개의 지역국립대학의 통합을 제안하고 있다.
2020년 기준 4년제 일반대학의 총 입학 정원은 31만 6,170명이다. 그리고 서울대 수준이 될 거점국립대의 입학 정원은 전체 일반대학 정원의 11.2%가 된다. 하지만 거점국립대학과 지역국립대학이 통합을 하면 전체 일반대학 입학 정원의 18.9%가 된다. 일반대학 입학생의 약 5명 중 1명이 서울대 수준의 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대학병목과 공간병목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지역 대학의 통폐합은 지역 정치인, 지역 주민들, 지역 대학들이 합심한다면 경상대와 경남과학기술대가 통합했듯이 얼마든지 실현가능하다. 여기에 중앙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보다 쉽게 통합을 이룰 수 있다.
지금까지 논한 바와 같이 지역거점국립대학을 중심으로 구조조정과 통합, 서울대 또는 한국대로의 이름변경, 정부의 3,600억 원 가량의 추가예산지원, 교수진의 연구비 확보와 사활을 건 노력이 합쳐지면 전국에 10개의 연구중심대학이 세워진다. 대마불사(大馬不死), 서울대 10개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 김종영은 추가적으로 국립대와 사립대 사이의 결합 가능성도 열어둘 것을 제안한다.
<참고문헌>
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 살림터, 2021.
대학무상화·대학평준화 추진본부 연구위원회, 『대한민국 대학혁명』, 살림터, 2021.
5. 미생(未生)이 아닌 완생(完生)으로: 대학입학보장제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수도권 독점을 해체하고 대학서열화를 완화하는 훌륭한 안이다. 그러나 교육방식의 전환을 일으키지는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서울대 10개가 만들어져도, 여전히 학생들은 몇 십 권의 문제집을 풀며 정답 찾는 요령을 익혀야 하며, 자신의 생각은 철저히 부정하고 주어진 정보만 암기하는데 몰두해야 한다. 대학입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선다형 상대평가제 아래 최고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서 반복적 인지 기술, 중하위 수준의 문제 해결 능력은 철 지난 능력이다. 대학이 기대하는 인재상과도 거리가 멀다. 실제로 OECD Education 2030은 미래에 필요한 역량으로 주도성 및 변혁적 역량을 강조했다. 이러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서울대 10개가 만들어진 후에는 새로운 평가체제로의 전환, 입시제도의 전환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평가가 배운 내용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사고를 키울 수 있도록, 입시가 학생들 줄 세우기가 아니라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이 되도록 변화해야 한다. 새로운 평가제도와 입시제도의 방향성을 타진하기 위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학입학보장제’를 살펴보자.
대학입학보장제는 ‘경쟁’과 ‘선발’이라는 패러다임을 과감히 버리고 ‘최저요건 충족’과 ‘입시보장’으로 학교가 ‘선발기관’이 아닌 본연의 ‘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데 목적을 둔다.
핵심은 명칭에서도 드러나듯 대학 교육을 따라갈 수 있는 일정한 수준을 갖춘 모든 학생에게 입학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교육 선진국에서도 다채롭게 나타난다. 앞서 살펴 본 캘리포니아 대학체제의 입학시스템도 그 중 하나인데, Statewide Index라는 공식을 사용해 캘리포니아 고등학교 졸업생의 상위 9%에 해당할 경우 UC에 입학을 보장한다. 또한 네덜란드 의대·법대도 자격기준을 충족한 지원자라면 추첨을 통해 선발을 실시한다, 알려진 대로 프랑스와 독일은 바칼로레아, 아비투스라는 자격고사를 통해 대학입학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안이 캘리포니아 대학체제를 모델로 삼은 만큼, 서울대 10개가 만들어 진다면, 일관성 아래 캘리포니아 입학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대학입학보장제를 발전시켜가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UC는 더 이상 SAT 또는 ACT 시험 점수를 입학 결정 요소로 고려하지 않는다. 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공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되어버린 우리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나아가 캘리포니아 입학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UC GPA(Grade Point Average)인데, 이 또한 상대평가 내신체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사회에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 UC GPA란 절대평가로 산출된 각 학교 내신등급을 특정 조건에 따라 전환한 것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캘리포니아 입학 시스템은 절대평가 내신체제 안에서 충분히 학생들의 입학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제 득보다 실이 많은 상대평가제를 극복해야 한다. 관련한 사회 인식도 상당히 무르익었다.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으로 줄 세우기 상대평가가 아닌 성취평가제가 시행될 예정이고, 선다형 문제풀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IB 과정(International Baccalaureate)도 경기도 200여개 학교에서 도입될 예정이다. 공정성 화두로 인해 공통 과목 영역에서는 상대평가제가 유지되고, 입시전형에서 정시가 확대된 점이 한계라 하겠지만, IB체제 확대 적용, KB체제 구축, 권역평가검증센터 설치 등 여러 방안을 통해 공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택과목 가산점 제도는 고교학점제를 발전시켜 가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평가체제가 개선되면, UC가 상위 9%에게 입학을 보장하는 것과 달리 서울대 10개는 상위 20%까지 폭넓게 입학을 보장하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서울대 10개가 2020년 기준으로 입학 정원의 약 18.9%를 수용할 수 있지만, 기존 명문대의 존재를 고려하면 상위 20%의 보장은 충분히 가능한 수치다.
대학입학보장제는 완전한 내신평가, 졸업 시 자격고사, 수시와 정시의 혼합체제 등 어떠한 형식을 갖추든지 간에 성취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학생과 학부모를 끝도 알 수 없는 무한경쟁에서 벗어나도록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평가가 경쟁을 유발하는 도구로, 자극적 서열화의 기준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되며,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전쟁터로서 대학이 존재해서도 안 된다. 이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기회를 다원화하고 ‘대학입학보장제’로 평가와 입시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교육 경쟁력과 교육의 본질을 모두 살리는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6. 복기(復棋)
지방대학 위기의 본질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 우리 사회는 수도권에 너무 많은 이권을 집중시켜 놓았다. 가파른 운동장에 승자와 패자는 있는가. 언젠가는 다 굴러 떨어질지 모를 위태로움만 존재할 따름이다. 이미 노출된 다량의 사회 문제가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많은 대학들이 지방대라는 명칭 아래 폄훼되고, 인서울만을 성공의 잣대가 되는 사회, 이처럼 선지가 하나 뿐인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강요이지 선택이 아니다. 독재와 독점이 악(惡)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때문에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그리고 ‘지방대학 시대’를 꿈꾼다면 이제는 대한민국 곳곳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구조화해 나가야만 한다.
앞서 논했듯 현재의 상황들은 기존 정치와 정책이 축조해 둔 결과일 뿐,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 나가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수도권으로 몰려가지 않아도 양질의 교육 누릴 수 있고, 대한민국 어디서나 탁월한 실력을 쌓을 수 있으며, 고용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이는 분명 우리의 노력과 결단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이혜정, 『대한민국의 시험』, 다산지식하우스, 2017, p61.
OECD, 「The future of education and skills Education 2030」. 2018.
사교육걱정없는세상,『현 대학체제를 진단하고 대학입학보장제를 제안한다』,2018
https://admission.universityofcalifornia.edu/admission-requirements/freshman-requirements/california-residents/statewide-guarantee/
https://admission.universityofcalifornia.edu/admission-requirements/freshman-requirements/gpa-requiremen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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