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한민국 교육정책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 관련하여

education guide 2024. 8. 15. 17:36

* 지난 10월 16일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과 관련하여 강민정 의원실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 글을 수정함. 

2028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 관련하여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시안 관련하여

일제강점기로부터 고등교육이 기형적으로 발달해 온 이래,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입시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아니었던 적은 없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이 문제가 갖는 사회적 파장은 격이 달라졌다. 22년 4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보고서(우리나라 초저출산과 지역불균형의 관계에 대한 실태분석)는 출산율 문제의 핵심으로 교육 격차와 경쟁을 언급할 만큼 교육과 그 중심의 대학입시는 우리 사회의 존망을 좌우할 중대 사안이 되었다.     

 

대학입시 문제의 심각성 이면에는 아래와 같이 크게 세 층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그것이다. 우선 격렬한 교육경쟁을 조장하는 기제는 1번이라 할 수 있다. 대중의 오해를 간단히 짚으면, 협력교육의 나라 핀란드에서도 대입 경쟁은 존재하고, 입시철에는 교육과정 파행도 일부 생겨난다. 독일의 경우도 입학정원제가 있지만 최근 아비투어 성적에 따라 합격이 좌우되는 경향이 짙다. 그럼에도 그 강도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지 않는 까닭은 해당 국가들의 대학체제는 다양한 성공경로를 구축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대학의 특정 지역 쏠림을 막고 국토 전반을 활용하며, 결코 선발만을 목적으로 하는 비정상적 평가 제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 우리 사회는 특수지역(서울)에 온 국민이 선호 대학을 몰아놓고, 칼 같은 서열(스카이서성한중경외시)을 유지하는 대학체제를 기반으로 함으로써, 온 국민이 여기에 진입하기 위한 신열을 앓는다. 관련 개혁 없이 2, 3번의 변화만으로는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란 쉽지 않은데 떡 하나를 두고 열 명이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 앞에, 가위바위보로 나누든 선착순으로 나두든, 사활을 걸어야 하는 세태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대학체제 개선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논제인 2, 3번 개혁은 경쟁해소에 기여하는 바도 있으나 초중등 교육의 회복과 질 향상을 위한 전제로서 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가령 2022 개정 교육과정은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으로 학생들을 키워낼 것을 비전으로 제시하지만, 2, 3번에 대한 개혁 없이는 실현할 수 없는 메시지가 된다. 개인의 성취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철저한 비교 속에서 성적이 산출되는 현재의 평가제도로는 ‘포용성’을 논할 수 없고. 문제 하나에 등급이 달라져 실수를 용납지 않는 현재로는 ‘창의성’ 교육을 논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2, 3번 개혁의 핵심은 현재의 ‘선다형 상대평가’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의 모순이 두드러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부)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4p

 

교육부 안은 ‘세계 주요국’이라는 논거를 적극 활용하며 기존 ‘선다형 상대평가’의 부적절성을 적극 강조한다. 지난해 12월 9일 ‘고교 1~3학년 전체 내신성적을 절대평가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밝힌 장관의 말과도 결이 같다. 그러나 일본·프랑스·홍콩·호주·미국·영국·중국·독일을 망라하며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창하던 교육부는 막상 결론에서 고2·3 까지 상대평가를 확대하는 안을 내어 놓았다.

 

(교육부)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9p

 

이 과정에서는 ‘5등급제’ 벤치마킹이라는 신선한 논리전개도 이어진다. 먼저 교육선진국들의 5등급제는 절대평가라는 전제 조건 아래 뒤따른 결과다. 벤치마킹의 핵심은 본받고자하는 대상이 지닌 탁월성의 본질적 부분을 내부에 정착시키는 것이므로, 해당 국가들의 평가제도를 벤치마킹하고자 했다면 핵심인 ‘절대평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런데 교육부가 벤치마킹한 것은 부산물인 ‘5등급제’다. 부산물인 5등급제를 따라해 봤자 교육부가 지적한 ‘전 세계 유일한 상대평가 9등급제’라는 꼬리표는 ‘전 세계 유래 없는 상대평가 5등급제’로 이름만 달리할 뿐 변할 것이 없다. 교육부가 5등급제 도입에 대해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으나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러한 상대평가의 확대는 고교학점제와의 불일치, 수능의 영향력 확대 등 여러 모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적성과 진로, 수준에 따라 학생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내신 상대평가가 확대됨으로써 학생의 자유로운 과목 선택은 형식만 남게 되었는데, 이제 다수의 학생들은 과목을 선택함에 있어서 학생 수, 공부 잘하는 학생의 비율 등 과목 선택의 유·불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내신 5등급제로의 변화는 내신 변별이 어려워졌다고 여기는 대학들의 수능 최저 기준을 넓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고, 기존 통계를 감안하면 수능이 중시되면 될수록 특목고·자사고·사교육특구는 유리한 위치에 설 확률이 높다. 나아가 수능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은 학교 교육과정과 수업방식도 이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학교는 고교학점제가 강조하는 다양한 교육과정보다는 수능 과목을 기반으로 한 교육과정을 구성하게 될 것이고, 수업에 있어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서술형 평가·과정 중심 평가보다는 수능에 최적화 된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이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교육부)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5p

 

한편 장관은 시안 발표 후 질의응답에서, 심화과목이 없어서 이공계의 우려와 인재양성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반대로 고교학점제 내에서 해당과목을 소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었다며 심화수학을 사회적 논의에 부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발제에서는(서울대 김경범 교수의 글) 대학들이 심화수학을 요구하지도,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도 못할 것이라 예상도 했으나, 필자는 실제 상위권 대학과 의대의 정시 전형에서는 이를 필수과목으로 반영할 가능성이 높으리라 본다. 현시점에도 수학 선택과목은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세 가지가 있으나, 실제 많은 상위권 대학들이 미적분 또는 기하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킬러문항 논란 이후 낮아진 수학의 변별력에 대해서도 대학들은 심화수학이란 잣대를 이용해 해결하려 들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화수학 수능에 편성될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5과목(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 미적분Ⅱ, 기하) 모두를 고2, 고3에 편성해야만 한다. 고2와 고3은 총 4개 학기밖에 안 되기 때문에 한 학기 수학 두 과목 편성이 이뤄져야 하며, 실상 3학년 2학기 이전에 학습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3개 학기에 5과목을 편성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우려할 법한 상황이다.

 

정리하면, 앞서 2, 3번에 대한 개혁은 초중등 교육의 회복과 질 향상을 위한 전제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은 관련한 진전이 전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때문에 앞으로도 학교 교육은 여전히 입시 교육에 종속될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의 중2 학생들이 경험할 교육과정·수능과목은 달라질지 모르나, 정해진 답을 빨리 찾아야 하는 공부, 옆 친구와의 비교로 평가받는 교육 방식은 한결 같을 것이며, 이로 인한 입시 강도도 여전할 것이고, 대학입시문제로 신음하는 대한민국 사회도 그대로 일 것이다. 애초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논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게, 도입될 고교학점제 실행에 맞게 교육의 목적과 정책적 결을 같이 하는데 최우선 목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내놓은 2028 대학입시 개편 시안은 도리어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를 뒤엎어 버리는 모양새를 갖췄다. 세계 어느 나라의 교육이든 ‘교육과정 -수업 -평가’의 일체화는 것은 교육의 기본 중 기본이건만, 평가가 교육과정과 수업을 왜곡시켜 버리는 이번 개편안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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