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승우(1959 - )
대한민국의 소설가이자,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서울신학대 를 졸업하고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한 이력만큼이나 신앙에 기반한 작품들이 돋보인다. 1981년에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오늘 볼 작품 '마음의 부력'은 2021년 44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최근 소설가 이승우(64)의 작품 세계를 분석한 연구서 『이승우의 사랑』(사진·문학과지성사)을 내놨다. 고전을 남기고 작고한 거장이 아닌 동시대의 작가, 그것도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작가를 연구한 이유를 묻자 그는 “한국 현존 작가 중 가장 깊이가 있는 작가”라고 답했다.
이승우는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사랑받는 작가다. 프랑스 명문 출판사 갈리마르가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엮어내는 ‘폴리오 시리즈’에 이승우의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한국 소설로는 처음으로 2009년 포함됐다. 장편 『생의 이면』은 2000년 프랑스 페미나 문학상 외국어 소설 부문 최종심 후보에 올랐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르 클레지오는 이승우 작가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는 한국에서 노벨 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작가로 이승우를 꼽아왔다.
소설집으로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일기』 『신중한 사람』 『모르는 사람들』,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내 안에 또 누가 있나』 『식물들의 사생활』 『생의 이면』 『그곳이 어디든』 『한낮의 시선』 『지상의 노래』 『독』 『사랑의 생애』 『캉탕』 등이 있다.
2. 마음의 부력 줄거리
나는 아내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서울로부터 떨어진 신생 도시에 서 공무원으로 일한다. 주중에는 근무지에서 기거하고 주말에는 본가에서 지낸다.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토요일에는 아내와 어머니를 뵈러 간다. 나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죽었다. 형은 나와 달리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았다.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 대학을 진학했어도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두 번이나 학교를 옮겼고 졸업도 하지 않았다. 몇 군데 직장을 다녔지만 연극과 문학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냈다.
반면 나는 답답할 정도로 규칙적이고 주어진 일에 성실했다. 나 역시 학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지만 어차피 들어간 대학이라 끝까지 공부하여 행정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틀에 박힌 사람인 반면 형은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광고회사 경비실 등 다양한 일을 옮겨 다니면서도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 형은 평소 “내가 영 자식 노릇을 못 한다” “너라도 어머니 마음 구겨지지 않게 하니 다행이다”라고 말을 흐리곤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내에게 전화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한다. 금전 관계에 문제가 없던 상황에서 어머니의 통화내용은 문제의 발생을 시사했다. 주기적인 방문 일에도 어머니는 집에 없었다. 밤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뒤늦게 어머니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오는 주기적인 날짜를 잊고 다른 지역의 기도회에 참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화를 받자 나를 형으로 착각했다. 어머니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평소 어머니는 형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오해한 적은 있으나, 내 목소리는 뚜렷하게 구분해 왔다. 어머니의 편애는 목소리에 대한 이해에서 드러났다. 아내의 표현대로 ‘매화꽃’과 ‘살구꽃’은 비슷하지만, 사람들은 ‘매화꽃’은 구분하지만 ‘살구꽃’은 구분하기 위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는 그간 어머니로부터 편애의 대상이 된 사실을 아내에게 토로한다.
“내 속에서 어렴풋이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생각들을 말로 옮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만 느끼는 종류의 감정일 수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자격지심이나 일종의 자책감 같은 것이 입을 틀어 막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11)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 과한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의 아픔에 주목할 뿐, 주목하느라,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는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36면) “자발적인 어떤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자 기 때문에 형을 소외시키고 형에게 박탈감을 준 셈이 된 동생의 마 음속은 어땠을까?”(38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혜택을 더 받은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과 부담감을 사람들은 간과했다. 형의 ‘면목없다’는 말을 들을 때 “어딘 가로 달아나고 싶은 부끄러움과 난처함을 아무에게도 말하지”(36면) 못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싫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자신보다 받지 못하는 형을 볼 낯이 없어서 더 괴로웠던 것이다. 어 머니의 집을 나오며, 창세기에서 야곱이 느꼈을 ‘마음의 짐’을 아내와 이야기했다. “혼돈하고 공허한 채로 내 마음속에 떠돌던 무정형의 어 둠을 끄집어낸 순간이었다.”(37면)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 곱’을 큰아들 ‘에서’처럼 꾸며 장자가 받을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했 다. 사랑하는 일은 결국 두 가지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그녀는 단지 작은아들을 사랑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 치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행위와 같은 것이 된다. 이긴 사람이 호명되면 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과 같 은 이치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호명되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37면) “사랑이 있을 뿐이다. 사랑이 속이고 빼앗은 사건을 만들어낸 것 뿐이다. 사랑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사랑이 사랑하는 이를 선택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사랑하지 않는 이를 선택하지 않는 일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38면)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가해를 가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형 ‘에서’가 어머니로부터 느낀 것이 ‘박탈감’이라면, 동생 ‘야곱’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형을 소외시킨 ‘괴로움’을 느낀다. 나야말로 삶에 대한 의욕도 사랑도 없는 태만한 사람이었다. 나는 형에 비해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나 역시 언제나 어떤 식으로든 형을 의식하며 살았다.
“편모 슬하에서, 탈선하지 않고, 끈기와 성실로, 어쩌고 하며 나 를 추켜세울 때, 특히 형이 곁에 있을 때는 더욱, 그들의 입을 틀어 막거나 어딘가 구멍을 파고 내 몸을 숨기고 싶었다. 내 어쭙잖은 이 른바 ‘출세’가 실은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의 결여, 특히 태만의 결과며, 따라서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닌데도 칭찬을 늘어놓는 것은 형만이 아니라 삶을 망신 주는 것이고, 내 마음까지 할퀸다는 사실 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내가 이룬 알량한 성취라고 하는 것이 적극 성의 결여로 인해 주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41면)
나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때로는 부끄러움과 상처를 초래했다. 자신 이 사랑을 받을 만큼 정당했는지, 자신의 사랑이 정당했는지를 되묻 는다. 자신은 쉽게 현실과 타협했으며 의욕보다 태만했던 안주의 결 과임을 고백한다. 고백은 자신을 향한 것 같지만, 기실 형에 대한 아 우의 사랑이며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에 대한 아들의 부끄러움이었다.
3. 해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공공선' 참조
이 소설의 중심어는 ‘부력(浮力), 뜨는 힘’이다. 문자적으로 부력은 가라앉는 삶을 수직으로 끌어올려 주는 힘, 그 삶을 떠받쳐 주는 힘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부력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우선 ‘뜨게 하는 힘’이다. 또 한 ‘떠 있게 하는 힘’이다. 소설가 정용준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중력에 반하는 힘’이기도 하다. 나는 ‘버텨주는 힘’으로 읽는다. 이런 다양한 풀이에서도 공통된 의미를 명확히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부력이 떨어지게 하려는 힘에 대한 탄탄한 반대 저항이라는 것이다. 이 의미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으로 갈수록 심화한다. 정리하자면, 이 소설에서 ‘부력’은 야누스적(Janustic)이 다. 한편으로 삶을 위태롭게 하는 사랑의 채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삶을 안전하게 받쳐주는 사랑의 보상이다. 달리 보면, 부력은 끌어 올려주거나 받쳐주는 힘이며, 아래로 곤두박질치려는 삶을 위로 향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삶을 조여오는 굴레에도 몸을 견실하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며, 자유롭게 하는 동력인 것이다.
이런 중의적 특징에 주목한다면, 독자는 이 소설의 다음 두 가지 주제에 좀 더 근접할 수 있다. 하나는 이 부력의 재료이고 다른 하나는 이 부력의 구체적인 양상이다. 먼저 부력의 재료는 ‘편애’다. 편애는 구약성경의 야곱과 에서의 예처럼 한쪽에 대한 일방적 사랑이다. 이 편애로 인해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 사이에 상호채무가 파생한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편애가 사랑하는 자보다 그 사랑을 받은 자에게 더 큰 채무로 남는다는 것을 천착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쏟아낸 숱한 말들이 사랑받는 자에게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사랑의 채무는 가족 안에서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모두를 억누르는 힘으로 전이된다는 것도 주목한다.
그런데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 마음의 부력이 그 편애의 빚으로부터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힘도 된다는 점을 제시한다. 사랑의 채무로 고뇌하는 이들을 상호 구원하는 은총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이 부력은 자기 삶의 슬픔보다도 상대방이 겪는 슬픔의 세계가 더 깊다는 것을 알고 더 절실하게 뛰어드는 자기희생으로 발화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부력의 구체적인 양상이 명확해진다.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감’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부력>은 남긴 말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된 남은 사람들, 그 말들에 붙들려 상실감과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 이들의 마음을 훑어본 소설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남긴 사람에게 늘어놓는 뒤늦은 변명 같은 소설입니다. 그러나 남긴 사람을 향한 이 변명들이 실은 남은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어찌 감 출 수 있겠습니까? (116쪽) 나는 되어진 일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활동을 주목하는 성향의 사람 입니다. '애쓰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애쓴 것이 반드시 이뤄지는 것도 아니라는 세상의 이치'를 모르지 않습니다. 애쓴 만큼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애쓴 것보다 더 얻기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일하는 사람의 의무지만, 그 일의 성취는 일한 사람의 권리가 아닙니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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