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세 번째: 문태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2 – 생가生家

education guide 2024. 9. 24. 12:40

1. 문태준

 

문태준(1970 - )

 

문태준은 1970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 시處暑외 아홉 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4동서문학상, 노작문학상, 유심작품상, 2005미당문학상, 2006소월시문학상, 2014서정시학작품상, 2018목월문학상을 수상했다.

 

2. 살얼음 아래 같은 데 2 - 生家

 

겨울 아침 언 길을 걸어

물가에 이르렀다

나와 물고기 사이

창이 하나 생겼다

물고기네 지붕을 튼 살얼음의 창

투명한 창 아래

물고기네 방이 한눈에 훤했다

나의 생가 같았다

창으로 나를 보고

생가의 식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고

사방 쪽방으로 흩어졌다

젖을 갓 뗀 어린 것들은

찬 마루서 그냥저냥 그네끼리 놀고

어미들은

물속 쌓인 돌과 돌 그 틈새로

그걸 깊은 데라고

그걸 가장 깊은 속이라고 떼로 들어가

나를 못 알아보고

무슨 급한 궁리를 하느라

그 비좁은 구석방에 빼곡이 서서

마음아. 너도 아직 이 생가에 살고 있는가

시린 물속 시린 물고기의 눈을 달고

 

출전: 『그늘의 발달』, 2008

 

3. 이해와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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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은 시집 가재미그늘의 발달을 통해서 최근 한국문단의 시의 경향을 거부하는 전통적 서정성을 보여준다. 시대의 문학적 경향을 추구하는 일련의 미학적 이론을 배제한 채 우리가 무심코 외면하거나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상적 풍경들을 기억을 통한 서정성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의 기억의 방식은 고향의 풍경에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그는 속도의 세상 뒤쪽에서 서서히 그 곳을 관찰하고 언어를 절제하면서, 느리게 볼 때에만 보이는 본질을 성찰한다.

 

살얼음 아래 같은 데 2’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과 함께 조망해 볼 수 있다.

 

가는, 조촘조촘 가다 가만히 한자리서 멈추는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물돌 곁에서, 썩은 나무싶 밑에서 조으는 물고기처럼

추운 저녁만 있으나 야위고 맑은 얼굴로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

살얼음 아래 같은 데

흰 매화 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

 

시는  물고기에 대한 정밀한 관찰로  시작한다. 그 관찰은 섬세하다. 사용된 어휘들은 우리말의 전통 속에서 무심하게 버려진, 따라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던 말로서 외래어보다 낯설고, 그래서 신선하다

 

관찰 아래 마주하는 물고기는 야위고 맑은 얼굴을 지녔다. 정확히 말하면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서 그 대상은 '나'일 수도 있다. 이래저래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라고 하는 다소 쓸쓸한 내면이 조명된다.

 

살얼음 아래 같은 데라는 지극히 평범한 제목을 가진 6행의 짧은 이 시는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세상의 냉혹함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아득한 마음이 섣부른 낙관과 비관의 바깥에서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

 

이때 의 마음은 물고기에 빗대어 묘사되고 있는데  살얼음 아래 같은 데2’에 와서는 와 물고기 사이에 창이 하나 생긴다. 그 창은 겨울 아침이 만들어 둔 얼음으로 여기서 와 물고기는 이제 동일화가 아닌 서로를 관찰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는 얼음 창 아래 물고기를 관찰하며 결국 자신의 삶을 성찰한다. 그리고 그 삶은 어린 시절 생가에 대한 회상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점은 여기서 ‘나’의 관심이 머무르는 곳은 생가라는 공간으로 표현되지만 정확히는 공간이 아닌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시간은 아마도 아버지, 어머니, 누이, 동생이 존재하고 있을, 자신의 순수성과 생의 평온함이 지켜지고 있는, 지금은 잃어버린 옛 시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나'는 물고기를 관찰하며 깨닫는다.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과 이별하지 않고 여전히 그곳을 맴돌며, 멀리 와버린 시간과 옛 시간의 틈 속에서 를 읊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음아. 너도 아직 이 생가에 살고 있는가 )우수에 젖어 있은 눈으로. 시린 물속 시린 물고기마냥 애상에 젖은 눈으로 어린 시절(생가)를 떠올리며 얼을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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