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두 번째: 유하, 자동문 앞에서

education guide 2024. 9. 23. 21:09

1. 유하(1963 ~ )

유하(본명 김영준, 1963 - )

유하는 대중들에게 시인보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의 감독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 그는 198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무림일기'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는데 대중문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감성과 화법의 시를 선보였다.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무림일기》,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저녁》등의 시집을 냈고, 1992년 본인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를 연출했다.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으로는 1996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2. 자동문 앞에서

이제 어디를 가나 아라바바의 참깨

주문 없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 세상이다

언제나 문 앞에 서기만 하면

어디선가 전자 감응 장치의 음흉한 혀끝이

날름날름 우리의 몸을 핥는다 순간

스르르 문이 열리고 스르르 우리들은 들어간다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들어가고

스르르 열리고 스르르 나오고

그때마다 우리의 손은 조금씩 퇴화되어 간다

하늘을 멀뚱멀뚱 쳐다만 봐야 하는

날개 없는 키위 새

머지 않아 우리들은 두 손을 잃고 말 것이다

정작, 두 손으로 힘겹게 열어야 하는

그,

어떤,

문 앞에서는,

키위 키위 울고만 있을 것이다.

 

출전: 무림일기(1989)

 

 

3.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현대인들이 자동문으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수고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려는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이를 키위 새라고 하는 소재를 활용하여 비유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현대인의 비극적 미래를 암시하며 경고한다.

 

1-3행에서는 본격적인 현대 문명의 비판에 앞서 자동에 대한 인식을 제시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 속에 나오는 문을 여는 주문이 없어도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이 어디에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4-10행에서는 자동문으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편리함에 길들여져 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동문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아무런 수고 없이 들어갔다 나오는 일을 반복하며, 이것이 계속될 때마다 쓰지 않는 손이 퇴화되어 가고 있다

 

11-18행에서는 키위 새를 소재로 하여 현대인이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하는 키위 새처럼 손이 퇴화되어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앞서 조금씩 퇴화되기 시작한 손은 키위 새의 날개가 점차 퇴화되어 결국 날지 못하게 되었듯이 우리들 역시 두 손을 잃게 되고, 이로 인해 정작 수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한 순간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이 다가올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4. 다양한 표현 방식

 

먼저 비유법을 활용하여 현대인을 키위 새에 빗대고 있다. 뉴질랜드의 키위 새는 먹이가 풍부한 땅에서 살다 날개가 퇴화되어 날 수 없게 되었는데 이러한 특성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현대인과 연관지었다. 기계 문명인 전자 감응 장치를 의인화하여 표현하였으며 자동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대구와 반복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스르르, 멀뚱멀뚱과 같 다양한 음성 상징어를 활용하여 상황을 효과적으로 희화화하고 있으며 / 어떤/ 문 앞에서는과 같이 행 구분을 활용하여 마주할 문제 상황을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시적긴장감을 높이고, 현대인이 마주할 비극적인 미래를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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