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세희(趙世熙, 1942~ 2022)
조세희는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
예에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그 뒤 10여 년간 작가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난장이 연작’ 중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한 후 이상문학상과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특징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12편의 연작 소설을 담은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소설집 《시간
여행》, 장편소설 《하얀 저고리》 등이 있습니다.
2. 하늘에 닿을 수 없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쟁이네 가족은 서울특별시 행복동 낙원구에서 아버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다섯 식구로 살고 있다. 그중 아버지는 키가 매우
작아 난쟁이라고 멸시받는다. 할아버지 대에서 독립하긴 했지만 본래 노비 집안이어서 무척 가난하다.
어느 날 난쟁이네 가족이 사는 동네가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무허가 건물이 철거당할 위기에 처한다. 영수가 동사무소에 가 보니 아버지와 영호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소리치고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소리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달린 알루미늄 표찰을 떼고 계셨다. 어머니는 명희 어머니에게 빚 독촉을 받고 있다. 예전에 건넌 방 사람들을 내보내기 위해 빌렸던 돈 때문이다. 어머니가 빌린 돈은 명희가 죽기 전에 남겨 두었던 돈이다.
영수는 중학교 3학년 때 공장에 들어갔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검정고시를 통과해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한다.
아버지는 지섭이라는 부잣집 가정교사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에게서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도 빌려 읽는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이 땅은 죽은 땅이라며 불공평하고 사랑 없이 욕망으로만 가득한 곳이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이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겠다며 벽돌 공장 꼭대기에 올라가 피뢰침을 잡고 발을 내밀어 자살하고 만다.
영희는 젊은 투기업자를 따라갔다가 강제로 순결을 빼앗긴다. 그리고 그 투기업자를 마취시킨 뒤 금고에서 돈과 아파트 입주권을 훔쳐낸다. 하지만 영희는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와 그 많던 집이 다 없어지고 공터만 남아 있는 걸 마주한다. 훔쳐 낸 입주권과 돈으로 입주 절차를 마친 영희는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지만 아버지가 벽돌 공장굴뚝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3. 동화적 색채와 사실적 묘사가 어우러진 독특한 모더니즘 소설
모더니즘 소설이란 어느 한 시대(근대화)의 모습을 객관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묘사한 작품을 말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달나라, 난쟁이, 팬지꽃 등의 단어들은 동화적인 색채를 띱니다. 그러나 작품에서 보여 주는 이야기는 동화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난쟁이네 가족이 겪는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삶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난쟁이 가족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동화적 요소를 띠고 있어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4. 난쟁이네 가족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아픔과 모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마다 시점이 바뀝니다. 1부의 서술자는 영수, 2부의 서술자는 영호, 3부의 서술자는 영희입니다. 이렇게 매번 서술자가 바뀜으로써 독자는 소설을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문장도 간결하여 작가가 고발하는 현실을 직접 마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병폐를 이분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난쟁이로 대변되는 무기력하고 소외된 빈민 계층과 주류 세력을 이루는 자본가 계층의 대립, ‘달나라’라는 이상 세계와 낙원구라는 이름과 달리 마치 지목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지는 동네의 대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5. 배경과 주제
이 작품은 1970년대 소외된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높고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고 집도 좋아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의 질도 높아진 듯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혜택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일매일 성실하게 일하지만 정작 받는 임금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개발을 명목으로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곤 했습니다. 그들의 인권은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난쟁이네 가족은 바로 이런 노동자들을 대표합니다. 영희는 젊은 투기업자에게 속아 강제로 순결을 빼앗깁니다. 영수는 공장 일을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습니다. 영호는 자기 가족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하고 현실을 증오합니다. 영수와 사랑하는 사이였던 명희도 끝내 독약을 마시고 자살합니다.
이 소설은 생존과 삶을 위해 투쟁하지만 철저히 묵살당하고 유린당했던 그 당시 노동자들의 아픔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6. 인물
난쟁이 가족은 아버지(난쟁이), 어머니, 장남인 영수, 둘째 아들 영호, 막내딸 영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가족은 대대로 노비 집안이었습니다. 영수의 할아버지 대에서 평민이 되긴 했지만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가난합니다.
아버지는 고층 빌딩 창문 청소, 수도관 청소 등 궂은일은 다 하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헌신합니다. 삼 남매는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각자 열심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투기업자는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버는 인물입니다. 난쟁이 가족이 애써 지켜 오던 행복을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7. 작가는 왜 ‘난쟁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요?
이 작품은 경제 성장 속에서 소외당하고 억압받는 계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생산과 소비의 기형적 경제 구조로 인해 항상 짓눌린 채 살아갑니다. 때로는 성(性)이 유린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건 다반사입니다. 경제 발전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노동자들의 삶은 철저하게 짓눌려 작아졌습니다. 이렇듯 난쟁이는 노동자들의 삶 자체를 대변한 것입니다.
8. 작가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난쟁이네 가족은 최선을 다해 일하고 공부하지만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난쟁이 아버지의 자살은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을 뜻합니다. 소설에서 아버지가 자살한 후 아버지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아버지는 따뜻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난쟁이 아버지는 모두가 일한 만큼 보상받으며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사랑 없는 세상에서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오직 사랑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이 강요되는 순간 그것은 이상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을 벌하기 위해 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상적인 세계도 투쟁의 대상이 되었던 지금 이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2024.09.23 - [교육/시&소설] - 한국명작소설 읽기(8) 이청준, 눈길
한국명작소설 읽기(8) 이청준, 눈길
1. 이청준 (李淸俊, 1939~2008)이청준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1965년《사상계》에 이 당선되어 등단한 후 1968년 로 동인문학상을, 1976년 로 이상문학
insight0navigator.tistory.com
2024.09.02 - [교육/시&소설] -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세 번째: 천상병, 귀천歸天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세 번째: 천상병, 귀천歸天
1. 천상병은 천상 시인 천상병 시인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시인입니다. 그는 희대의 간첩조작사건으로 밝혀진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6개월 간 고문을 당하며 성기능을 잃었
insight0navigator.tistory.com
'교육 > 시&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세 번째: 문태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2 – 생가生家 (8) | 2024.09.24 |
---|---|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두 번째: 유하, 자동문 앞에서 (2) | 2024.09.23 |
한국명작소설 읽기(8) 이청준, 눈길 (3) | 2024.09.23 |
한국명작소설 읽기(7): 김유정, 동백꽃 (7) | 2024.09.21 |
한국명작소설 읽기(6): 김유정, 봄봄 (5) | 2024.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