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의 변방에 서서 그늘을 노래한 시인
천상병은 김종삼에 대해 '말없던 침묵의 사나이'라고 했습니다. 침묵의 사나이가 남긴 시를 읽으면 폐허의 삶을 시와 음악으로 버텨온 한 인간의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230편이 넘는 시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작품들은 아직도 우리에게 위안을 주니 그의 침묵은 우리 속에서 여전히 말을 건네옵니다. 그 중 세 편을 만나보려 합니다.
2. 김종삼, 술래잡기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 가리기 헝겊을 맨 채
한 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 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출전 : 《십이음계》 1969)
3. 이숭원, 해설
이 시는 김종삼이 파악한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려주는 작품이다. 심청을 웃겨 보자고 시작한 놀이가 결과적으로는 심청을 더 슬프게 하는 현실. 이것이 김종삼이 지각한 삶의 모습이다. 심청을 "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시인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구절일 것이다. 심청은 꿈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심지어 아이들과 놀 때에도 외로움과 슬픔을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심청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심청을 위해 놀이를 벌인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안 됐다는 심청을 위로해" 준 아이들도 이미 상처를 입은 존재들이다. 결국 심청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외로움과 슬픔의 굴레 속에 갇혀 있는 상태다.
세상이 이런 판국이라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한다든가, 새로운 삶을 도모한다든가 하는 것도 다 부질없는 일이 된다. 어떻게 행동해도 인간은 슬픔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시에 보기 드문 존재론적 허무주의 시다. 그러면서도 이 시는 감상적인
허무감은 전혀 노출하지 않고 담담한 보고의 어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에 담긴 슬픔의 기류와 감정의 습기가 없는 담백한 화법이 대조를 보인다. 이러한 독특한 기법은 김종삼 시의 주된 표현법 중 하나다.
2024.09.12 - [교육/시&소설] -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여섯 번째: 김종삼, 민간인 民間人
2024.09.12 - [교육/시&소설] -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일곱 번째: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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