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백석, 북방에서-정현웅에게 (2025학년 9월 모의평가)

education guide 2024. 9. 4. 15:47

1. 백석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모더니스트.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 출생으로 본명 백기행이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식교육을 받았다. 필명은 백석(白石)과 백석(白奭)이 있었는데 주로 백석(白石)을 많이 사용하였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타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좋아하여 그의 이름 중 석을 택해서 썼다. 오산고보 재학 중 백석은 부친을 닮아 성격이 차분했으며 친구가 없었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경성문화 인쇄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다. 윤동주는 백석 시집을 구할 수 없어 노트에 시를 필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해방 전 천재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2. 북방에서 - 정현웅에게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던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던 말도 잊지 않았다

오로촌이 멧돝을 잡아 나를 잔치해 보내던 것도

쏠론이 십릿길을 따라 나와 울던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무 이기지 못할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 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침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은금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

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한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하늘로 땅으로 ― 나의 태반 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 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백석, 북방에서-정현웅에게 -

 

* 정현웅 : 백석과 같은 시대에 활동한 삽화가. 백석의 옆 모습을 그린 바 있다.

* 홍안령, 음산 : 중국 동북부와 한반도 주변에 있던 산계와 산맥의 이름

* 아무우르 : 흑룡강의 러시아 이름

* 숭가리 : 송화강의 만주어

* 이깔나무 : 깊은 산과 고원에서 자라는 소나무과의 낙엽 교목

* 오로촌 : 만주의 유목 민족

* 맷돌 : 멧돌(멧돼지)의 오기로 보인다.

* 쏠론 : 아무르강의 남방에 살고 있는 퉁구스족

* 보래구름 :작게 흩어져 떠도는 구름

 

3. 이숭원, 해설

이 시는 19407문장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은 대개 행과 연의 길이가 긴 장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백석 특유의 열거와 대구의 기법이 그 형태를 유지하는 동력이 된다. 위의 시에서도 소재를 열거해 가면서 그것들이 서로 대응을 이루도록 시어를 배치하고 있다. 예컨대 위의 시 1연에서 부여와 숙신이 짝을 이루고 발해와 여진, 요와 금이 각각 짝을 이룬다. 그리고 다음 행에서는 홍안령-음산아무우르-숭가리가 짝을 이루고 -사슴-너구리송어-메기-개구리가 짝을 이룬다. 이처럼 대구와 열거가 결합되어 미묘한 운율감을 조성하고 시 전체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감정의 절정 부분으로 시상을 이끌어 간다.

 

1연과 2연에 열거된 지명 및 사물의 이름들은 백석의 유랑이 지닌 의미를 상당히 거시적 윤곽으로 드러내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개인이 유랑을 집단의 유랑으로 환치시키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어쩌면 백석은 자신의 유랑을 통해 한민족의 뿌리 뽑힌 삶을 암시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한반도 북반에 거주했던 옛 종족의 이름을 열거하는 노력을 보였는데, 이러한 시행 구성을 위하여 상당히 많은 역사적 지식을 습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이 작품은 떠남과 떠돎, 그리고 돌아옴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이는 성장과 탐색, 그리고 성찰이라는 신화적 일대기와 잘 대응하는 구조라고 본 견해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절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랑의 원인이 된 현실적 고통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시에 나와 있지 않다. 이 부분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자기가 떠날 때 많은 소중한 것을 포기하거나 배반하고 떠났다는 것, 보내는 쪽에서도 상당한 아픔이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등이다.

 

이 시의 중요한 내용은 3연과 4연에 제시되어 있다. 나는 아무런 슬픔도 시름도 없이 한가한 마음으로 유랑을 시작한 것이다. 오히려 떠난 다음의 생활은 상당히 담담한 정경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랑의 생활을 지속해 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끄러움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적 자각이다. 시인은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못했다고 적었다. 이제 자신의 유랑이 그렇게 떳떳한 일이 아니며 소중한 많은 것을 저버린 일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부끄러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유랑을 부끄러움으로 인식한 이상, 그의 내면에는 참으로 이기지 못할회한의 아픔이 밀려 들게 되고 이제 그는 떠난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그의 회귀가 시작된다. 그가 떠나온 곳, 그의태반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의 부끄러움과 슬픔과 시름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

 

그러나 이미 무량한 세월이 유랑의 시간 속에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역사적·지리적 지명이 환기하던 중량감은 사라지고 병들고 지친 풍경만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자기를 붙잡던 소중한 대상들, 자신의 애모의 대상, 존경의 대상도 사라졌을 뿐 아니라 자신의 희망도 용기도 의욕도 다 사라지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삶의 근거, 태반 자체가 상실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을 그대로 토로하게 된다.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상황은 참으로 처절하다. 이미 생의 마지막 국면을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다만 많은 역사적 지식의 축적을 바탕으로 웅혼한 시상을 야심적으로 전개한 이 작품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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