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합강정가, 작자미상
합강정가는 1792년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사입니다. 총 165구에 달하는 작품인데 오늘 모의고사에서는 82구가 실렸네요. 해당 작품은 현실비판가사입니다. 전라도의 합강정이라는 곳에 당시 전라감사였던 정민시(鄭民始)가 순시를 나왔는데, 나라를 평안히 해야할 관리가 온갖 착취와 악한 행위를 행하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노래로 인해 정민시가 관직을 빼앗기게 되었다는 거예요. ≪정조실록 正祖實錄≫에 의하면 11월에 정민시가 삭탈관직되었다고 합니다. 이 가사가 궁중으로 유입되면서 정민시가 유배를 당했다는 기록도 가사와 함께 전하고요. 문학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는 부분이네요.
가사 내용을 보면 감사의 순시에 맞추어 온갖 준비를 하느라고 백성들이 무덤까지 깎아서 길을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 소닭을 공출하고 그릇을 앗아가고, 집집마다 돈을 내라고 하는 등의 백성들이 당하는 온갖 참상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감사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아첨을 떠는 여러 수령들과 순시는 하지 않고 온갖 산해진미 속에서 놀이에만 열중하는 감사의 행태를 낱낱이 묘사합니다. 낮에 노는 것도 부족하여 합강정 주변의 강에서 밤 뱃놀이를 하는데 인근 백성들이 강 옆에 횃불을 들고 십리나 줄을 서서 있었다고 해요. 이본에 따라서 감사를 저주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끝맺고 있는데, 작자는 학식을 겸비한 하층 양반으로 생각됩니다.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항하기 시작하는 조선 후기 봉건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죠.
2. 본문 해석
장마 가뭄에 피해 입은 백성이 관찰사 가을 순행 기다림은
가을걷이 부족함을 채워줄까 해서인데 지나는 곳마다 죄를 묻는 폐단 있네
-> 백성들은 관찰사가 자신의 어려움을 살펴봐 줄 것을 바라며 기다렸는데, 오히려 없는 죄까지 꼬투리잡는 관찰사의 모습에 실망하고 있습니다.
무논 재해도 감췄는데 목화밭이야 거론할까
백 묘나 되는 벌건 땅에 백지징세 하는구나
-> (번역이 조금 애매하네요. 원전은 ‘水田災수전재도 뭇엇거든’입니다. 이를 감안하면)
물 대기 좋은 논에 있었던 재해도 고려치 않았는데, 목화밭의 피해야 이야기 할까.
아주 넓은 땅이 벌겋게 타들어 가서 아무것도 없는 땅에 세금을 징수하는구나.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인자한 우리 임금 곡식 한 묶음도 모래 덮일까 염려하는데
불쌍한 백성 논밭에다 좁은 길 넓히란다
-> 백성을 염려하는 임금님과 달리 관찰사는 순행길 과시를 위해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네요
각읍 관리 독촉하니 채찍 몽둥이 낭자하다.
-> 각 마을 관리들을 몰아붙이다보니, 백성들은 채찍질을 당하며 일합니다
허다한 관인들이 대호 소호에 분담시켜
사방 부근 십 리 안에 닯과 개가 멸종하네
-> 관찰사 대접을 위해 큰 마을 작을 마을 할 것 없이 각출을 당하고 있네요
부자는 괜찮지만 가련한 이정은 저녁밥 재촉할 때
텅 빈 부엌에서 우는 아낙 발 구르며 하는 말이
방아품에 얻은 양식 한두 되 있건마는
채소도 있건마는 그릇은 누구에게 빌릴꼬
앞뒷집 돌아보니 섣달그믐에 시루 빌리는 격이로다
-> 모든 걸 빼앗겨 저녁밥 먹을 그릇도 없는 백성들의 처지입니다. 이웃에게 빌리려고 해도 다들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마치 명절에 떡 찌는데 쓰는 그릇인 시루를 빌리는 것처럼 다들 그릇이 귀합니다.
한 마을 닭과 개 다 먹어 치우고 집집마다 또 거둔단 말인가
대호에는 한 냥 넘고 소호에도 육칠 전이라
이 놀이 다시 하면 이 백성 못 살겠네
-> 관찰사 일행들이 큰 동네 작은 동네 할 것 없이 다 먹어 치워서, 한번만 더 잔칫상을 펼친다고 하면 백성들을 살 수가 없을 거라고 합니다. 지배 계층의 유흥을 위해 수탈 당하는 백성들의 현실이죠.
낙토에서 태어난 사람 태평성대 좋다 하여
편안히 지내더니 하릴없이 떠도네
한 사람의 호사가 몇 사람의 난리 되고
집과 논밭 다 팔고서 어디로 가잔 말인고
-> 관찰사의 악덕이 백성들의 삶의 근간을 다 뿌리뽑고 있습니다. 유랑의 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우리 임금님 어진 마음 밝은 촛불 되게 하시어 비추소서 비추소서
-> 임금님께서 이런 상황을 다 헤아리고 밝히시길
소문에 들리기를 아전 향원 벌한다기에
간악한 이 벌하는가 여겼더니 음식과 도로 탓하는구나
-> 어떤 지방 관리가 벌받는다고 해서 이런 상황이 이제 해결되는구나 했더니, 오히려 관찰사 일행 대접이 부족해서 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예 차출 무슨 일인고 순령수의 권세로다
음식은 넘쳐나고 뇌물은 공공연히 오고가니
좋을시고 좋을시고 상평통보 좋을시고
많이 주면 무사하고 적게 주면 트집잡네
-> 순령수는 대장의 전령과 호위를 맡는 직책입니다. 관찰사 휘하의 이들도 부패한 모습을 보이네요. 이들에게 뇌물을 잘 바쳐야 작업 인부(노예)로 끌려가지 않는 상황입니다.
춘당대에 치는 장막 오목대에 무슨일인고
참람한 과거장서 재주 겨루는 유생들아
오십삼 주 시예향에 의로운 선비 하나 없단 말인가
-> 작자 미상의 지은이가 나름 배운 사람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부분이죠. 춘당대는 서울 창경궁 안에 있던 과거를 실시하던 곳이죠. 지금과 같은 부패한 관찰사를 보노라니 그곳에서 과거를 치르는 제대로 된 선비가 하나도 없느냐는 탄식입니다.
먹을 복 좋은 우리 순상 출세운 좋은 우리 순상
들어오시면 육조판서 나가시면 팔도 관찰사
공명도 거룩하고 부귀도 그지없다
망극하도다 나라 은혜여 감격스럽도다 임금님 은혜여
한 토막 절개라도 있다면 온 힘을 다해 은혜에 보답하리라
배은망덕하게 되면 자손에게 화가 미치리라
-> 의로운 선비가 나와야 한다는 기대와 바람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관리라면 임금님의 은혜를 생각해서 자신의 일에 덕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혹 그렇지 않을 경우 화가 있으리라는 경고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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