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월에 별이 된 '민중시인'
지난 5월에 신경림 시인의 타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대중들조차도 '갈대'와 같은 그의 시를 널리 애송했습니다. 사랑받는 시인이였죠. 그의 시는 주로 서정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인간의 고통과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고,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시적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역사적 아픔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시를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별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는 한국의 농촌과 민중의 삶을 다룬 '농무'를 함께 감상해 보고자 합니다.
2. 신경림, 농무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 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출전 : 《농무》(1973). 첫 발표는 《창작과 비평》(1971. 가을호).
3. 이숭원, 해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농무가 어떠한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논농사는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협동하여 농사일을 하고 가을에 추수를 끝내게 되면 농악 놀이를 벌여 수확의 기쁨을 나눈다. 농악 놀이는 농촌 공동체의 구성원이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 그것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행하는 축제의 향연이다. 농악을 통해 농촌 공동체의 잠재된 에너지가 폭발하며 즐거운 놀이를 통해 다음 해의 농사일을 위한 새로운 동력이 저장된다.
한국 사회는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경제 개발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으면서 경제 수치를 높일 수 있는 중공업 위주의 산업 정책을 택하게 된다. 산업 도로가 뚫리고 대규모의 공장이 건설되고 새로운 시설이 가동되면서 도시의 팽창이 이루어진다. 농촌에서 힘들게 일해 봐야 농사꾼 소리만 듣게 되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농촌 젊은이들은 도시로 올라와 공장의 노동자로 취직하게 된다. 그 결과 도시는 더욱 비대해지고 노동력을 잃은 농촌은 공동화되면서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것이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까지 일어난 한국사회의 변화였다.
이렇게 농촌 공동체가 와해되자 농민들의 힘의 집결체였던 농악도 자취를 감춘다. 텔레비전이 전 국민의 오락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시의 소재인 ‘농무’는 와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의미를 지닌다. 오랫동안 농촌 공동체 구성원의 소망과 기쁨을 실어 전하던 농무가 이제는 이상야릇한 구경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 70년대의 현실이었다. 이 시는 그것을 소재로 하여 70년대 초의 농촌 풍경을 사실적으로 드러냈다.
이 시의 첫 행,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라는 시구는 단순히 농악놀이가 끝났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오면서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농악 놀이가 더 이상 농민들의 위안의 방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상징적 전언을 담고 있다. 농악 놀이가 끝난 것이 아니라 농악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동체가 사라졌고 농촌에서의 긍정적인 삶이 막을 내린 것이다. 보아 줄 사람도 즐길 사람도 없는 농무를 추는 것이야말로 궁상스런 일이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등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농악패들의 운명을 그대로 드러낸다.
넷째 행에 나오는 ‘우리’라는 지시어는 농무에 참여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소외의 길을 걷고 있는 다수의 농촌 사람들을 지시한다. ‘분이 얼룩진 얼굴’이라는 시행도 농무로 땀이 나서 분이 얼룩진 것을 의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움과 울분 때문에 눈물이 흘러 분이 얼룩진 것이라는 느낌도 전달한다. 농악 놀이를 끝낸 사람들은 운동장을 빠져나와 학교 앞 소줏집에서 술을 마신다. 원래 농악대들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쌀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집에서 막걸리를 빚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였다. 그래서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희석식 소주가 농촌 사람들의 술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6행부터는 사람들의 분한 감정이 직선적으로 표출된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라는 독백은 농촌 사람들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다. 술에 취한 농악패들은 자신들의 울분을 떨쳐 내려는 듯 다시 악기를 들고 장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솟구치는 울분에 신명으로 호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철없는 어린애들만 그들의 뒤를 따를 뿐이다.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만 그들의 몸부림을 바라볼 뿐이다. 보름달 아래 펼쳐지는 그들의 놀이하는 모습은 임꺽정 이야기의 등장인물로 비유된다. 시인은 신분 차별의 모순에 폭력으로 맞선 민중적 저항담의 인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좌절한 농촌 사람들이 저항의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울분과 자포자기로 얼룩진 그들의 몸짓은 신명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제대로 우러난 신명이 아니라 위장된 신명이고 왜곡된 신명이다.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고 비료 값도 안나오는 농사를 짓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니 세상잡사에서 벗어나 신나게 춤이나 추는 것이다. 그들의 춤이 절정에 달하는 대목은 ‘도수장’앞이다. 도수장이란 소나 돼지를 잡는 도살장을 말한다. 그들은 도살장 앞에 이르러 백정의 자식인 임꺽정이 무리를 규합하여 불평등한 세상에 저항하였듯이 춤으로써 답답한 세상에 부딪쳐 보는 것이다. 그 춤은 그러므로 신명의 춤이 아니라 울분의 춤이고 세상살이의 답답함과 고달픔을 토로하는 춤이다.
마지막 두 시행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는 모두 ‘~ㄹ꺼나’로 끝나고 있다. 이 어미는 영탄조로 ‘그렇게 하자꾸나’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다. 이 말은 ‘그렇게 하자꾸나’라는 뜻이 중심을 이루지만 그 내면에는 ‘그렇게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체념의 심정이 복합되어 있다. 아무리 춤으로 몸부림을 쳐도 답답하고 고달픈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강건한 현실의 벽이 허물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을 시인 자신이 잘 알고 있고 미친 듯 춤을 추는 농민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춤은 농촌 현실의 운명적 비극성과 출구 없는 절망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신경림은 붕괴되어 가는 농촌 현실의 비극성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 대상을 포착하여 농촌의 우울한 몰락을 형상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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