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연한 사랑 & 사람
'우리가 물이 되어'는 강은교 시인의 대표작 입니다. 이 시는 물이라는 자연의 이미지와 사랑이라는 주제를 결합하여, 사랑의 본질과 그 순수함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고정된 형태 없이 변화하며, 결국 하나로 합쳐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사랑이 지닌 유연함과 연대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 시의 주요 메시지는 사랑이란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각자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흘러 하나가 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의 서정적인 어조와 깊이 있는 표현들은 독자에게 강한 감정적 울림을 주죠. 강은교 시인의 시에서 만날 수 있는 특유의 부드럽고도 강렬한 언어를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2.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출전 : 《허무집, (1971)
3. 이숭원, 해설
불과 물은 모순 관계에 있다. 물은 불을 소진시키고 불은 물을 증발시킨다. 물과 불의 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기느냐에 따라 사물의 운명이 결정된다. 식물의 경우에 한정시키면 물은 식물을 생육하는 동력이 된다. 태양 빛은 식물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타오르는 불은 식물을 연소시켜 죽음으로 몰아간다. 강은교는 식물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인간을 나무와 관련지어 상상하였다. 그래서 물에 친화적이고 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시인은 불과 물이라는 대립적 위상을 시상의 축으로 삼아 인간의 삶의 자세에 대해 명상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물은 모든 존재에 윤기를 돌게 하고 서로 화해롭게 만나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가뭄은 물이 부족한 상태이니 식물이 마르고 땅이 갈라지게 하여 균열을 일으킨다. 마르고 갈라진 균열의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이 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이 시는 말한다.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변하여 우리가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르게 되는 상태를 꿈꾼다. 그 주변에는 물의 혜택을 듬뿍 받은 키 큰 나무가 함께 서 있는 상황도 설정했다. 이만큼 시인의 상상력은 식물과 물 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물을 조화와 합일의 상징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물로 만나 흐르면 우리도 물의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어 거기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이라는 말도 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명상의 깊이를 나타내는 긍정적인 표현이며 “처녀인/부끄러운 바다“ 역시 물로 인해 미지의 신비로운 영역이 전개될 수 있다는 희망적 전망의 표현이다. 요컨대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나면 죽어 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다.
2연이 화자의 소망을 말한 것이라면 3연은 현실의 정황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가 가장 뚜렷하게 표출된다. 물로 만나는 것은 죽어 가는 생명을 살아나게 하지만 불로 만나는 것은 모든 존재를 불에 탄 ‘숯(잔해)’으로 만든다. 물이 조화와 융합을 상징하는 데 비해 불은 갈등과 대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로 부딪쳐 다투게 되면 죽음이 오고 결국 “숯이 된 뼈“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욱 무서운 것은 불이 일회적 사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로 퍼져가 세상 전체를 불타게 한다는 점이다. “ 쓰다듬고 있나니 “라는 말은 달래 준다는 뜻이 아니라 결국은 너희들도 내 신세가 되겠구나 하는 연민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4연에서는 화자가 바라는 바를 단적으로 표명하였다. 아직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태는 멀리 있으니 그 세계를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라고 호명하였다. 이상 세계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불의 세계가 지난 다음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이 소망은 그렇게 간절하지가 않다. 현실의 불을 우리의 물로 잠재우고 흐르는 물로 만나자는 의욕적이고 자발적인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불과 같은 또 하나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기에 물의 순리에 맡기는 방식을 택한 것일까? “ 인적 그친/넓고 깨끗한 하늘“을 물로 만나는 미래의 표상으로 설정하였는데 여기 ‘인적 그친’이란 말에는 시인이 지닌 고독에의 지향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모든 존재의 화합을 원하면서도 사실 인간은 불의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존재고 그래서 많은 것이 타서 없어진 다음에 새롭게 만나자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는 듯 하다. 1연의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가 4연에서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약화된 것도 암울한 현실에 좌절한 자아의 의식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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