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스물 한 번째: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education guide 2024. 8. 30. 14:11

1. 강물 따라 흐르는 우리 삶

 

가을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많은 이들이 쓸쓸함과 낙엽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만날 시는 가을 강에 주목해요. 가을강을 두고 울음이 타는것으로 표현하며 마치 강물이 흐르는 동안에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 결과 강물의 흐름은 단순히 자연 풍경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흘러들어오죠.

 

2.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박재삼(1933-1997, 향년 64세)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겄네.

 

출전 : 《춘향이 마음》(1962). 첫 발표는 《사상계》 (1959. 2).

 

3. 이숭원, 해설

 

시의 화자는 예민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제삿날 큰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불빛이 환하게 빛나는 장면에도 마음에 파문이 일고,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도 눈물이 나고, 그런 슬픈 사연을 들으며 노을이 물드는 가을 강을 바라보면 또 마음이 일렁인다. 그러한 자신의 요동하는 마음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이라고 지칭했다. 어느 한자리에 지긋하게 눌러 있지 못하고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마음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 동무 삼아 따라간다는 말은 자신의 외로움과 친구의 외로움을 동시에 나타낸다. 사랑을 잃은 동무는 물론 외롭고 사랑을 아예 찾지 못한 화자도 외롭다. 둘 다 외로운 존재이기에 쓸쓸한 가을 햇볕을 동무 삼아 데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언덕을 오르는 것이다. 그러다 산등성이에 이르러 멀리 보이는 적막하면서도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접하자 눈물이 솟구치는 것이다.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보니 마침 제삿날이라 큰집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불빛이 보이고 그것보다 더 환하게 노을이 물드는 가을 강이 눈에 들어온다. 이 두 정경은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더욱 처연하게 느끼게 하면서 인생의 여러 가지 곡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노을이 물드는 강을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이라고 말한 것은 시인의 독창적인 표현이다. 이 시행은 친구가 터뜨려야 할 울음을 가을 강이 대신 울어 준다는 뜻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울음이 타는 처연한 형상으로 보였던 강은 오히려 세상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다 녹이고 승화된 모습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강물은 산골의 작은 시냇물에서 발원되어 여기까지 흘러왔을 텐데 산골의 경쾌한 물소리가 첫사랑의 기쁨을 나타낸다면 중간 단계의 강물은 사랑이 깨진 슬픔을, 그리고 하류의 넓은 강물은 모든 슬픔을 포용하고 바다와 융합하는 절제의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은 “소리 죽은 가을 강“으로 변한다. 그렇게 소리 죽은 가을 강의 적막한 풍경 앞에서는 너나 나의 슬픔이나 외로움 따위는 지극히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소리 죽은 가을 강이 슬픔을 완전히 삭인 것은 아니다. ‘소리 죽은이란 말에는 강물의 저변에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겉으로 소리를 내지 않을 뿐 슬픔은 앙금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떨쳐 내려 해도 앙금처럼 남아 있는 슬픔이 바로 한恨이다. 시인은 그러한 가을 강의 모습을 처음 보겄네라고 말했다. 제삿날 큰집에 갔다가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듣는 중에 우연히 저무는 가을 강을 바라본 것인데 거기서 한국적 정한의 표상을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박재삼이 전통적인 정한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는 말은 이것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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