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⑦: 이용악, 그리움

education guide 2024. 8. 22. 15:03

 1. 그리움은 풍경이다. 

그리움은 마음에 새겨진 따뜻한 흔적, 시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의 자국입니다. 멀리 있어도 자꾸만 떠오르는 얼굴이고, 보이지 않지만 마음 채우는 잔잔한 소리입니다. 그리움은 잡히지 않지만 항상 곁에 머물러 있는 바람이며, 그리움은 풍경입니다. 이용악는 그리움의 풍경을 보여줍니다. 

 2. 이용악, 그리움 

이용악(1914년 -71 년)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출전 : 《이용악집》(1949). 첫 발표는 《협동》(1947. 2).

 

 3. 이숭원 해설 

 

이 시의 주제는 제목 그대로 그리움이다. 그리고 그리움의 대상은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 북방 지역이다. 시인은 어느 겨울날 눈 오는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고향을 생각하고 있다. 시의 첫 연, “눈이 오는가 북쪽엔/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에서 의문과 영탄이 결합된 어법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이것은 눈이 오느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눈이 오는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도 아니다. 겨울이면 폭설이 내려 사방을 온통 흰빛으로 덮어 버리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에게는 서울과는 다른 함경도 북방 지역의 설경이 진짜 겨울다운 풍경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고향의 가장 고향다운 모습이 바로 백색의 설경이었던 것이다.

 

2연에서는 고향인 함경도 지역의 구체적인 지명이 제시되면서 그리움이 하나의 풍경으로 환치된다. 백무선白茂線은 함경북도 중앙부에 있는 백암역에서 두만강 끝의 무산역에 이르는 전장 188킬로미터의 철도노선이다. 함경도의 가장 험한 지역을 관통하는 노선이므로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서 철로가 개설되었을 것이며 그곳을 지나는 화물차는 느린 속도로 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함박눈 쏟아지는 벼랑길을 돌아 느릿느릿 움직이는 검은 화물차의 모습은 그 자체가 극적이고 시적이다. 시인은 고향의 고향다운 풍경의 두 번째로 백무선 화물 열차를 떠올린 것이다.

 

 

이러한 풍경의 제시 다음 단계에 비로소 사람이 개입한다. “연달린 산과 산 사이/너를 남기고 온/작은 마을로 그리움의 축이 이동한다. 어떻게 보면 함박눈과 백무선 열차는 네가 살고 있는 마을을 불러내기 위한 소도구의 역할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갈 수 없는 먼 곳이지만 그곳에도 복된 눈이 내려 그대도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주는 눈을 화자는 복된 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로 그 마을에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니라 평화로운 삶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넣었다.

 

4연의 잉크병 얼어드는이라는 표현도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날씨가 매우 춥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추위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잉크병을 끌어들인 것은 화자 자신이 글 쓰는 사람임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이 시가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적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은 한밤중 잠을 깨어 느닷없이 몰려드는 그리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 감정의 강도는 이 부분의 문법적 균형을 깨뜨리기까지 하였다. 절실한 감정에 가슴이 벅차오르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것처럼, 이 부분의 시행 구성은 바로 그러한 절실함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 담긴 의미를 어법에 맞게 바꾸면 이 추운 밤에/어쩌자고 잠을 깨어/차마 잊을 수 없는 그리운 그곳을 생각하는가?“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시인은 함축적인 생략의 어법으로 그리움의 강도를 높이고 여운을 남기는 효과를 거두었다.

 

5연은 1연을 반복하면서 끝을 맺었다. 1연의 반복은 시상을 종결짓는 표지가 되며 고조된 감정을 순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보면 이 시는 영화의 장면 같은 공간의 이동 양상을 보여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1연에는 눈이 오는 장면이 제시되었고, 2연에는 눈 내리는 북방의 산악 지대를 달리는 백무선 열차의 모습이, 3연에는 네가 살고 있는 고향의 모습이, 4연에는 그곳을 그리워하는 나의 모습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5연에서 눈 내리는 1연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었다. 요컨대 눈 내리는 밤에 솟아오른 그리움의 감정을 단순한 형식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형식의 단순성이 오히려 감정의 진솔성을 그대로 환기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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