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에 기고했던 글
조지프 피시킨 UCLA 로스쿨 교수는 기회 다원주의를 논하며 산출의 불평등 못지않게 투입의 불평등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운 나쁘게 어떤 장소에서 태어난 개인은 열악한 학교와 네트워크에 놓이며 일련의 제약에 직면하는데, 이런 제약들이 쌓이면 기회 경로가 강력히 차단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과도한 수도권 쏠림으로 여러 사회 문제에 신음하는 대한민국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역소멸 위기와 교육 붕괴를 마주한 한국 사회에 성공 경로를 다양화하는 일은 무엇보다 시급하며, 특히 그 중심에 있는 교육과 다시 그 중심에 놓인 대학 체제를 개선하는 일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실상 대한민국 고등교육 지형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기형적이다. 미국과 독일은 주마다 우수한 연구 중심 대학을 갖추고 있고, 가까운 일본만 봐도 다수의 명문 대학들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지만, 한국 사회는 특수지역(서울)에 온 국민이 선호하는 대학을 몰아놓고, 대학 간 서열을 칼같이 유지하기에 온 국민이 여기에 진입하려는 신열을 앓는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기회를 확대하며, 투입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으로만 쏠리는 제반 인프라를 여러 지역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수도권과 지역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안이 필요한데 이에 따라 등장한 것이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다.
지난 2월15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발표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은 새로운 대학 체제에 대한 담론을 더 넓고 깊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필요성을 앞서 주목시킨 쪽은 오히려 국민의힘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7월26일 12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국정 목표로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85번째 국정과제로 ‘이제는 지방대학 시대’를 제시했고, 수도권 쏠림 현상이 대한민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이므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 천명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안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부각됐다. 이에 앞서 국립대 총장들은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당위성을 윤 정부 인수위에 건의하기도 했는데, 김병준 인수위원장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강조함으로써 지역 대학 육성의 필요성은 보다 두드러지게 되었다.
때문에 최근 이재명 대표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약 발표는 여야가 모두 주목했던 수도권 쏠림 해소와 교육 정상화 실현 방안을 이제 한국 사회가 분명한 실천으로 옮길 때가 됐음을 명확히 한 사건으로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만의 공약으로 치부하며 정쟁으로 빠져서는 안 되며 대한민국 곳곳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다양하게 구조화하는 일로 시선을 전환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리 정책과 정치가 초래한 결과”라며 “이전과 다른 정책이 시행되면 전혀 다른 결과, 즉 불평등 수준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윤 정부의 ‘살기 좋은 지방시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인해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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