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뇌과학 그리고 공부

뇌과학으로 보는 영유아 읽기 교육의 핵심

education guide 2024. 8. 15. 17:17

1. 국어교사로서의 궁금증

국어 교사이자 두 명의 어린 아이를 둔 아빠로서 읽기와 관련해 늘 궁금했던 것이 있습니다.

 

1. 인간은 어떻게 읽기를 습득할까?

2. 그렇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어떻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옳을까?

 

오늘은 이 두 가지에 대한 답을 풀어 보려 합니다. 출처는 2018년도 대한민국학술원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한 Stanislas Dehaene의 '글 읽는 뇌(2017)'입니다.

 

2. 읽기 습득 3단계

 우선 읽기 습득은 세 단계를 거칩니다.

 

  1) 그림 단계(pictorial stage) : 단어를 사진 찍는 단계

  2) 음운 단계(phonological stage) : 문자를 발음으로 변환하는 단계

  3) 철자 단계(orthographic stage) : 단어 재인이 고속화되고 자동화 되는 단계  

 

이런 과정에서 여러 뇌 회로가 변화는 것을 뇌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좌반구 후두측두의 ‘시각단어형태영역(문자상자, 그림 빨간 색 참조)’가 발달하고 이 영역과 측두엽, 두정엽, 전두엽의 언어 영역들 사이의 소통이 발달합니다. 이 후 여러 해에 걸쳐서 문자 단어가 유발하는 신경 활동은 증가하여 점차 성인의 읽기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읽기 피질 네트워크에 대한 현대적 모형

 

읽기 학습은 이런 뇌 영역들이 언어 습득을 가능하도록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뇌과학적으로 볼 때 뇌는 기본적으로 읽기와 무관합니다. 문자가 등장한지 5,400여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유전자에 의해 읽기 능력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죠. 뇌의 가소성에 대해 많이들 들어 보셨을 텐데 뇌는 읽기 학습을 통해 '글'을 읽는 뇌로 변해갑니다. 실제로 Castro-Caldas의 연구를 보면 문맹자와 문해자의 뇌는 큰 차이를 보이며, 양쪽 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문해자들이 훨씬 두껍습니다. 이처럼 우리 뇌는 읽기 경험에 따라 다양한 능력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그 예로 읽기 학습은 우리의 언어 기억을 향상시킵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의 경우 이 언어 기억력이 높아 머리 속에 중요 사항을 잘 담아 둡니다. 성장기에 읽기 능력을 잘 발달시키고, 읽기 경험을 풍부히 하면 얻게 되는 이점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1985년 영국 심리학자 우타 프리스는 지금은 고전이 된 읽기 습득 모델을 제안하며, 세 개의 주요 학습 단계를 구분하였습니다(이는 이론적 단순화이며, 세 단계는 사실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1) 프리스에 따르면, 5~6세경 첫 번째 단계는 ‘표어문자’ 또는 ‘그림문자’ 단계입니다. 

이 시기의 아동은 아직 문자의 논리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시각 체계는 단어를 마치 물체나 얼굴처럼 처리합니다. 사진 보듯이요. 시각 체계는 가능한 모든 시각적 특징(모양, 색, 문자 방향, 곡률 등)에 의존합니다. 아직 정규교육을 받기 이전인 이 단계에서 아동은 주로 자기 이름을 알아보거나, 브랜드 이름처럼 눈을 끄는 몇몇 단어만 알아봅니다. 아동은 단어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몇몇 피상적 단서를 이용하며, 이로 인해시각적 유사성에 쉽게 속아 넘어가죠. 또 알고 있는 단어라도 다른 모양으로 쓰면 읽지 못합니다. 이런 특징들은, 이 시기 아동의 뇌가 개별 문자나 문자 발음에는 주의를 하지 않고, 단어 전체 모양과 의미를 직접 대응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진정한 형태의 읽기라고 할 수는 없는 단계입니다.

 

2) 두 번째 단계는 ‘음운 인식’입니다. 문자를 말소리와 연결하는 단계입니다.

 말소리들을 조합하여 단어를 만드는 것을 연습합니다. 이제 아동은 새로운 단어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게 되고 종종 문자 이름을 배우기도 합니다.([에이], [비],..)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지식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읽기 습득을 지연시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음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음소는 추상적이고 내현적인 말소리 단위입니다. 진정한 지적 혁명은, 아동이 말소리가 음소로 쪼개질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ba] 소리가 두 개의 구성 요소 즉 음소 [b]와 음소 [a]로 구성된다는 것을 알 때 이루어집니다. 결국 핵심은 말소리가 음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음소는 결합되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을 ‘음소 인식’이라 합니다. 음소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며 음소를 알게 하려면 알파벳(한글의 자음 모음) 기호를 명시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음소인식 교육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음소 카드 등 여러 교구를 활용할 수도 있고 여러 교육 앱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영역에서 구조화된 학습 도구를 스스로 제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시중에 개발된 학습교구를 적절히 활용하면 유용합니다. 이때 적절히를 꼭 명심하세요.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은 반드시 전제되어야하고 음소를 가르칠 것이란 우리의 목적에 맞는 도구여야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토도한글, 소중한글과 같은 몇몇 앱들을 다운받아 테스트해 보았는데, 아쉽게도 음소 인지보다 다른 영역의 활동요소가 더 많은 앱들이 보였습니다. 단어맞추기처럼요.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영유아에게 글을 읽게 하는 교육이 목적이라면 무엇보다 철자를 소리로 변환하게 하는 활동이 핵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OO 앱이 음소 학습만 선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서 유익해 보입니다.  아무쪼록 교육목적에 맞는 앱을 잘 선별해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3) 철자 단계에서는 서로 다른 크기의 시각적 단위로 구성된 방대한 어휘가 뇌에 자리를 잡습니다. 

이어휘집은 단어의 빈도나 이웃(철자가 서로 한 개만 다른 단어들 save의 이웃은 sale,same,cave 등) 등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계가 되면 단어 읽기 시간은 더 이상 길이나 자소 복잡성 등에 의해 좌우되지 않죠. 오히려 어떤 단어를 얼마나 자주 접하는가 하는 것이 점점 더 많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접촉 빈도가 낮은 단어는 접촉 빈도가 높은 단어에 비해 읽기 속도가 느립니다. 또한 이웃 단어의 수도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rain과 달리 vain과 같은 단어는 읽는 속도가 느리죠. 이런 모든 효과들은 두 번째 읽기 경로인 어휘경로가 점차 확립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어휘경로는 문자를 발음으로 변화하는 음운경로와 상호 보완하게 됩니다. 이 철자 단계의 가장 큰 특징은 단어 길이의 영향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음운 단계에서 아동은 한 번에 문자 하나씩 순차적으로 단어를 해독하므로 읽기 시간은 그 단어를 구성하는 문자 수에 비례하여 증가합니다. 철자 단계가 되면 점점 더 읽기가 유창해지며 단어 길이 효과는 서서히 줄어듭니다. 읽기 전문가인 성인들은 짧은 단어(8개 이하의 문자)인 경우, 모든 문자를 동시에 취급하는 병렬 처리를 통해 단어를 읽습니다. 요약하면 병렬성과 효율성이 증가하는 것이 철자 단계의 특징입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영유아 글 읽기 교육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먼저 아동은 음소를 인식해야 한다.

 2) 문자를 소리에 대응시킬 수 있어야 한다.

 3) 어휘경로를 구축해야 한다.  

 

 3. 읽기 습득 단계를 고려한 교육 방법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교육해야 합니다.

 

1) 철자를 소리로 변환하는 것이 읽기 습득에서 핵심 단계입니다.

단어전체학습 보다 파닉스 학습이 필요합니다. 음운적 수준에서는 단어를 가지고 놀거나 단어를 구성하는 소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시각적 수준에서는 문자 모양을 재인하거나, 문자를 따라 그릴 수 있습니다.

 

2) 이후에는 문자나 문자집단이 음소에 어떻게 대응되는지를 반복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단어를 많이 보는 것만으로는 뇌가 이런 대응을 스스스로 추출해 내지 못합니다. 각각의 말소리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각각의 문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발음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각각의 자소에 서로 다른 색깔을 칠하거나 또는 자소를 이동시켜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가능합니다. (앱  활용 이외에도 시중에 한글 자음+모음으로 글자를 맞추는 보드게임도 효과적입니다.)

 

3) 읽기가 힘든 일이지만, 문자를 해독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고유의 내적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여 합니다.

 

4) 읽기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이 아동의 뇌에 굉장히 깊고 유용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모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글쓴이는  읽기 수업을 마친 후 아동의 뇌 속에 새롭게 형성된 연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림을 상상해 보라고 합니다. 읽기 노력 자체가 엄청난 뉴런 활동을 만들어 내는 만큼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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