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이란 대답이 가장 많을 줄 알았습니다.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 인사들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학생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가장 많이 꼽은 이는 3반의 OOO학생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누군지조차 몰라서, 상당히 놀랐습니다. 세상에,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학생이라니... 이후 저는 오고가며 그 아이를 조용히 관찰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유가 보였습니다.
우선 그 아이는 점심을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가끔 바나나, 우유 같은 부식만을 급히 챙겨 돌아갔죠. 아낀 시간은 공부를 했습니다. 쉬는 시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개 자리에 앉아 문제를 풀었죠. 식사 시간을 없애거나 줄이고, 쉬는 시간을 아껴 입시를 준비하는 그 모습을, 아이들은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다시 떠올려 보아도 대단한 학생임은 분명하지만, 단언컨데 권하고 싶은 공부법은 아닙니다. 성공적인 공부를 위해서 시간 관리도 필요하고, 자투리 시간의 적극 활용도 필요하지만 시간 관리와 자투리 시간에 대한 오해는 없어야 합니다.
학습에 있어 자투리 시간의 활용은 평소 낭비되는 시간의 효율적 활용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등하교 시간이 길다면, 오고가는 차 안에서 단어를 외우거나 메모해 둔 질문을 핸드폰을 활용해 답을 찾아 보는 것이죠.
여기서 수면시간, 식사시간, 운동시간을 자투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수면, 식사, 운동은 그 자체가 효과적인 공부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잠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켜 주고, 식사는 우리의 집중력을 높여주며, 운동은 우리 뇌의 성능을 높여줍니다(이전 글 참고). 게다가 휴식시간도 학습 효과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죠. 동일한 학습량이어도 휴식의 유무에 따라 기억의 강화 정도는 큰 차이가 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의 Cohen 박사팀의 연구가 이를 확인시켜 줍니다. 뇌자도(MEG)를 활용해 학습하는 인간의 뇌를 살폈더니, 짧은 휴식 시간 동안에도 뇌 속에서는 기억을 재생하는 속도가 오히려 20배나 빠르게 증가하여, 높은 학습 효과로 이어짐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3명의 실험 참가자들은 10초 동안 평소 잘 쓰지 않는 왼손으로 ‘41234’에 해당하는 건반을 가능한 한 빠르고 정확하게 여러 번 짚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0초 동안 휴식을 취하고 이를 다시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적한 뇌의 활동은 휴식 시간에도 계속 이뤄졌을 뿐 아니라, 실제 연습 때보다 20배나 빠르게 관련 기억의 재생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10초 후에 다시 학습을 시작했을 때 수행 능력은 보다 향상 되었죠.
앞선 강의에서도 말씀 드린 것 같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 공부로 이어지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뇌는 휴식을 통해 공부한 내용을 보다 압축적으로 기억에 저장합니다. 해야 할 공부가 많더라도 약간의 휴식을 곁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휴식은 공부를 하는데 있어 결코 ‘사치’가 아니며, 오히려 또 하나의 ‘공부’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보다 배꼽이 커서는 안되겠죠^^ 학교에서 수업 50분에 10분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독일 막스프랑크 연구소 Pieter M. Goltstein 박사 연구팀의 생쥐를 활용한 기억력 연구를 봐도 너무 짧은 휴식, 또 너무 긴 휴식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테스트를 받는 쥐들에게 10분 휴식, 30분 휴식, 60분 휴식, 180분 휴식을 취하게 했더니, 10분을 쉰 쥐와 180분을 쉰 쥐는 훈련 내용을 쉽게 기억해 내지 못했거든요.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적절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 이제 이 글을 읽은 학생, 학부모가 있다면 ‘사당오락’, ‘엉덩이에 굳은 살 박혀야 한다’와 같은 오랜 이야기는 옛 전설로 조용히 묻어두시기 바랍니다. 과학적이고 지속가능한 학습은 ‘공부’와 ‘쉼’의 조화를 이루는 공부니까요.
그 때 그 아이에게도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조금 쉬어 가며 하렴. 그래도 넌,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좀 쉬려무나~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좀 쉬려무나~
<참고문헌>
- Buch ER, Claudino L, Quentin R, Bönstrup M, Cohen LG. Consolidation of human skill linked to waking hippocampo-neocortical replay. 2021
- Annet Glas, Mark Hübener, Tobias Bonhoeffer, Pieter M Goltstein. Spaced training enhances memory and prefrontal ensemble stability in mic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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