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들의 학습 과정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얼마나 자발적인 태도로 노력하느냐’의 여부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문제를 풀다가 “아, 엄마, 잠깐만. 이거 아닌 것 같아. 다시 생각해볼게” 하는 순간 아이들의 메타인지를 느낀다. 문제 풀이에 실패할 때도 많지만 실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불변론자와 증진론자
심리학에서는 특별히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무언가를 빠르게 성취하는 사람, 즉 천재가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을 ‘불변론자entity theorist’라 한다. 그리고 천재와 반대되는 부류의 존재를 믿는 이들을 ‘증진론자incremental theorist’라고 칭한다.
불변론자는 사람의 성향은 고정된 것이며 지능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지능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능력이기에 노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성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자신의 성공을 타고난 재능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평범한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 많은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
반면 증진론자들은 지능이란 후천적인 것으로 개인의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학습과 관련해서도 불변론자와 증진론자의 접근 방식은 매우 다른데, 이와 관련하여 우리 연구팀은 ‘노력 여부’를 조작한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초등학교 1~3학년까지 아이들을 임의로 나누어 ‘통제집단’과 ‘실험집단’으로 구분했다. 연구진은 두 집단의 아이들에게 같은 내용의 글을 하나 제시했다. 다만 통제집단에게는 읽기 쉽게 작성된 글을, 실험집단에게는 조금 어렵게 쓰인 글을 보여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연구진은 글을 다 읽은 두 집단의 아이들에게 “본문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다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생각을 실험자에게 대답한 뒤 본문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렀다.
모든 실험이 끝난 후 연구진은 두 집단의 아이들에게 ‘노력하는 것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이 불변론자와 증진론자 중 어느 쪽에 해당하는 생각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시험 수행 결과에서는 두 집단 간의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메타인지, 즉 자신감 부분에서는 불변론자 이론을 가진 아이들과 증진론자 이론을 가진 아이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됐다. 증진론자 이론을 가진 아이들은 ‘본문의 내용을 모두 이해했느냐’는 실험자의 질문에 ‘노력과 상관없이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불변론자 이론을 가진 아이들 중 통제집단, 즉 별다른 노력이 요구되지 않은 집단에 속한 아이들은 본문 이해도에 대해 자신감이 높았던 반면,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실험집단에 속한 아이들은 낮은 자신감을 보였다. 똑같이 시험을 잘 봤음에도 노력을 요하는 수행에 있어 불변론자 이론을 가진 아이들은 자신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을 보인 것이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게 능사는 아니다
혼자 공부할 때 이런 착각으로 아이의 자신감이 하락한다면 그다음에 이어지는 행동과 선택은 학습에 최적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배울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함에도 학습을 지레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일례로 어린아이에게 작은 글자가 가득한 책을 보여주면 아이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어렵다’고 판단해버린다. 글자가 많은 책이 글자가 적은 책보다 어려울 수는 있지만, 사실 글자의 분량과 글자의 크기는 책의 난이도와 큰 상관이 없다. 단지 ‘작은 글자의 책’은 어렵다는 메타인지 착각이 아이의 행동을 바꿀 뿐이다.
메타인지 착각에 빠진 아이들 중 상당수는 ‘오래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런 아이들은 컨트롤 착각으로 인해 30분이면 끝날 공부를 세 시간씩 잡고 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수학은 하지 않고 영어만 붙잡고 있으면 두 과목 시험 모두를 망치는 결과를 불러온다.
한 과목에만 올인하는 것은 좋은 학습 습관이 아니다. 학습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이를 잘하기 위해서는 ‘포기’라는 선택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관련 학습을 아예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학습 템포를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가 포기를 못하면 엄마가 옆에서 조절을 해줄 필요도 있다. 다른 과목의 공부를 제시하거나 잠깐 쉬는 시간을 갖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결론적으로 부정확한 메타인지를 가지고 노력이 아닌 천재만을 중요시하는 학습 풍토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이 부정적 결말의 시발점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천재가 좋다고 믿는 부모와 그러한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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