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소설

분석이 아닌 해설로 만나는 시 서른여섯 번째: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education guide 2024. 10. 1. 07:07

1. 황지우

황지우(1952 -)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이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연극원 극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 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출전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3. 이숭원,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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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영화관에서는 본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애국가가 연주되었고 애국가가 나오면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애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스크린에는 곡의 내용에 맞추어 동해와 백두산의 모습과 삼천리 화려 강산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다가 을숙도 갈대밭에 날아오르는 새 떼의 모습으로 화면이 종결되었다. 그렇게 애국가가 끝나면 관객들은 자리에 앉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방적으로 애국을 강요하면서 강압적으로 정권을 유지해 가는 정권의 이중성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이미 제도로 굳어진 것이어서 관객은 거기 따를 수밖에 없었다. 황지우의 이 시는 바로 그 장면을 모티프로 하여 당시의 암울한 사회상과 소시민의 나약한 일상성을 풍자하였다. 이 시가 1980년 광주의 비극적 참사가 일어난 다음에 쓰여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시에 담긴 환멸의 내용에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시의 진술 방식은 당시의 대중들이 현실을 보는 태도처럼 이중적이다. “애국가를 경청한다고 진술되어 있지만 실제로 애국가를 경청하는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제히 일어나라는 말도 표면적 진술과 이면적 사실이 상치된다. 어떤 사람은 불평을 터뜨리며 또 어떤 사람은 낄낄대면서제각각 일어나는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삼천리 화려 강산이 화면에 펼쳐지지만 우리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광주의 참극을 딛고 정권을 잡은 당시 집권층에 대한 반감 때문에 현실에 대한 냉소적 감정이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었다.

 

 

 

화자는 화면에 펼쳐지는 을숙도 갈대숲 위로 날아오르는 새 떼들의 군무를 보면서 저 새들이 각자 열을 지어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고 상상해 보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억압적인 세상을 살고 있기에 그런 상상이 도출된 것이다.

 

그러한 상상은 우리들도 저 새들을 따라 이 답답한 세상 밖으로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당시 화면에 펼쳐지는 정경은 정말 후련해서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라는 가사를 끝으로 애국가는 종료되고 화면도 사라진다. 그 가사가 끝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주저앉을 때 그 전에 잠시 가졌던 탈출의 희망, 전복의 기원도 함께 사라져 버린다. “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로 묘사된 우리들의 행태는 경박하고 소심한 소시민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사람들은 진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고 세상을 쉽게 살아가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탈출의 기대를 갖는 것은 잠시의 환상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오래 보전하려는 현실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현실을 떠나 모험을 감행하는 일은 소시민인 우리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 시의 제목은 새들도 저렇게 세상을 뜨는데 우리는 세상을 뜨지 못하고 답답한 일상에 갇혀 있다는 환멸감을 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냉소보다 그렇게 무력하게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냉소와 환멸에 초점이 놓인 작품이다. 이러한 자기 환멸은 더 심한 무력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 성찰의 노력이. 황지우는 이러한 지적인 성찰을 통해 1980년대 시의 한 경지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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