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詩)를 감상할 수 있길 바라며.
시를 분석과 해체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학생들을 자주 보기에, 시를 감상과 해설로 만나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시가 어려울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도움을 받을 것이 이숭원 선생님의 글들입니다. 이 분의 해설을 발판으로 시의 세계를 새로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여기에는 이숭원 선생님의 글 몇 편을 안내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김소월의 ‘진달래꽃’입니다.
2. 김소월, 진달래 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3. 이숭원 해설
대한민국 사람으로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시가 이처럼 국민 애송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는 우선 이해하기가 쉽고, 구조가 단순해서 외우기도 쉽고, 그 안에 담긴 생각이 애틋해서 감정의 여운이 길게 남을뿐더러 아어형 시어의 반복을 통해 낭독의 아름다움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20년대 평북 정주에서 생활한 김소월의 감각으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영변 약산에 피어나던 진달래꽃의 의미와 ‘가실 때에는’에 담긴 가정어법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야 이 시의 참다운 정취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의 화자는, 님이 자기가 싫다고 떠나는 날이 오면 말없이 고이 보내 주는 것은 물론이요 님의 앞길에 진달래꽃까지 한 아름 따다가 뿌려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평범한 지명과 소재가 아니다. 영변은 김소월의 고향인 정주에서 가까운 곳이며 약산은 영변의 명승지다. 봄이 되어 약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던 이름난 곳이다. 우리가 봄이 되면 진해 벚꽃이나 지리산 철쭉을 보러 가자고 하듯이 그곳 사람들 사이에 서는 약산 진달래 구경 가자는 말이 관용어처럼 쓰였다. 봄날의 약산 진달래는 그 시대 그 지방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었던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요컨대 이 시의 화자는 자기 곁을 떠나는 님에게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안겨 주고자 한 것이다. 평안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약산 진달래를 두 팔로 한 아름 따다가 님이 가는 길을 아름답게 꾸며 축복하겠다는 뜻이다.
가시는 걸음마다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가라고 화자는 말한다. 《국어대사전》(이희승 편, 민중서림, 3판, 1995)에는 ‘즈려밟다’의 의미를 “제겨디디어 사뿐히 밟다 “라고 밝히고 <진달래꽃>의 이 시행을 예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겨디디다’라는 말은 “발끝이나 발뒤꿈치만으로 땅을 디디다“라는 뜻이다. 즉 ‘사뿐히 즈려밟고’는 힘을 주어 눌러 밟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구름 위를 걸어가듯 아주 사뿐하게 밟고 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2연과 3연의 의미는, 떠나는 님의 길에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약산의 진달래를 펼쳐 놓을 터이니, 그 아름다운 꽃길을 마치 구름을 밟고 가듯 그렇게 우아하고 사뿐하게 밟고 가라는 뜻이다.
우리는 다음으로 1연과 4연의 ‘가실 때에는’이 가정의 어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상태는 님과 화자가 어떤 형태로든 만나고 있고, 그런 처지에서 떠날 것을 예상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지금 당신이 나를 진정 사랑하는지 어쩌는지 알지 못하지만, 설사 당신이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싫다고 내 곁을 떠나는 그런 때가 와도 나는 당신을 미워하거나 붙잡고 앙탈하지 않고, 당신이 가는 길에 아름다운 약산 진달래를 가득 뿌려 줄 것이며, 그리하여 그 길이 아름다움으로 충만하기를 빌 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문맥의 내면에는 당신이 나의 진심을 알고 내 사랑을 받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지만 그것은 표면에 드러내지 않았다. 이 시의 아름다움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감정과 생각의 아름다움에서 온다. 님이 떠나는 그 순간에도 님의 앞길을 아름답게 꾸며 주려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내면은 드맑고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진정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님이 떠날 때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앞의 시행과 관련지어 생각하면, 님에게 홀가분한 떠남을 마련해 주기 위한 화자의 배려임을 알게 된다. 4연은 1연의 반복이면서 시상의 종결을 지어야 할 대목이다. 그러므로 서정적 문맥으로 볼 때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는 것 이상의 강화된 의미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위치는 이별의 슬픔을 누르고 님의 앞길을 아름답게 치장하겠다는 뜻을 말한 다음 대목이 적당하다. 만일 진달래꽃으로 치장하겠다고 해 놓고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한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위선이며 가식임을 드러내는 결과가 된다. 정말 님이 아름다운 길을 걸어 사뿐히 떠나가기를 기원하는 경우라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시행이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정말 이 시의 화자는 님이 떠날 때 진달래꽃이나 뿌려 주며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 시에 제시된 상황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래의 시점을 가정한 것이기에 실제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이 말을 하는 화자의 절실성에 비추어 보면 이 모든 언술이 참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지금 님을 사랑하는 강도가 절정에 달하여 님에게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상황인데 눈물 흘리지 아니하고 님을 고이 보내 주는 것을 못한 데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 이 시의 화자는 훨씬 높은 차원에서 감정의 양태를 굽어보며 님에게 단수 높은 사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멋진 여자라면 정말 사랑해볼 만도 하다는 생각이 님에게 떠오르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므로 이 시의 진의는, 떠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남에 있으며, 사랑의 상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결실에 있다. 이별의 상황을 설정하여 화자의 가슴에 있는 사랑의 진실을 표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 이 시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의미 구조를 뒤받쳐 주는 정제된 형식과 미묘한 시어의 배치에서 온다. 시의 각 연이 거의 대등한 율격을 지니면서 약간의 음절 조절을 통해 소리와 의미의 변형을 꾀하는 수법이라든가, ‘~리오리다’를 세 연에 걸쳐 반복하면서 그 중간인 3연에 ‘가시옵소서’를 집어넣어 소리의 반복과 변화를 도모한 방법, “역겨워/가실 때에는“이라는 투박하고 거친 음감의 말 다음에 부드러운 어감의 말을 배치하여 대조적 효과를 노린 것 등 이 시의 소리 구조는 의미 구조와 완벽한 호응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음률의 아름다움이 고조된다.
소리와 의미의 호응은 서정시의 본질인데 그 호응이 간결한 형식 속에 이만큼 잘 이루어진 시도 사실 별로 없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 시를 서정시의 전범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읽는 사람마다 이 시에 친숙감을 느끼며 ‘의미 있는 소리’의 세계에 젖어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서정시의 전범을 만들어 낸 사람이 김소월이다. 그는 우리 서정 민요의 가락을 이어받아 오로지 혼자서 이 일을 했다. 1920년대 근대시 형성에 끼친 김소월의 공적은 이처럼 눈부신 것이었고 그 미학의 여운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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