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타고난 보행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모로코 출신 이슬람 여행가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서유기』의 모태가 된 현장의 『대당서역기』 등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옛사람들은 수많은 기행문을 남겼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태생적으로 걷기를 좋아하는 생물인 듯 합니다. 물론 현대인 중에는 걸으면 다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이래저래 피곤해져서 싫다’며 걷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래도 해맑은 얼굴로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보면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는 행위가 사람에게 본질적 ‘쾌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2. 일리노이대 클레이먼 교수 연구팀의 '산책-기억력 상호 관계 실험'
산책은 마음 건강뿐 아니라 신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최근 산책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 속속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클레이먼(Kleiman) 교수 연구팀의 실험이 대표적입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논문으로 정리하여 《미국 과학원 회보》에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55~80세 남녀 60명에게 하루 40분 동안 주 3회 산책하게 한 다음, 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사했죠. 그로부터 반 년 후, 산책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해마 크기가 평균 2퍼센트 남짓 확대되었고 기억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해마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일수록 기억력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다. 산책으로 체내의 ‘뇌유래신경영양인자(Brain-Derived Neurotrophic Facror, BDNF)’ 분비량이 증가하는데, 이 물질이 기억력 증강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합니다.
3. 걷기의 신비는 '다리'에.
걷기의 신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다. 애초에 걷기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족보행 로봇을 제작해보면 이 점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족보행으로 체중을 떠받치는 설계 자체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중심이 불안정해 까딱하면 넘어져서 볼썽사납게 바닥에 나뒹굴거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버둥거립니다.
그렇다면 우리 뇌는 보행 중 어느 정도로 정교하게 두 다리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수많은 신경 과학자가 이 수수께끼 풀이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보행을 실행하는 정교한 신경 메커니즘은 아직 해명되지 못했죠. 이 난제에 뜻밖의 곳에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다. 선발 투수로 나섰던 신경과학이 아니라 구원투수로 등판해 멋지게 공을 던진 시스템 공학 연구자가 실마리를 찾아냈다. 답은 뇌가 아니라 ‘다리’에 있었습니다.
1990년, 캐나다의 사이먼 프레이저대학교(Simon Fraser University) 소속 맥기어(McGuire)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동력 장치가 없는 컴퍼스 모양의 이족보행기가 넘어지지 않고 경사면을 걸어서 내려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수동 보행’이라 부르는 현상이죠. 이후 일본 나고야공업대학교 후지모토 히데오 교수 연구팀이 한층 정교해진 보행 로봇을 디자인했습니다. 잠시 책을 덮고 인터넷을 검색해 실제로 움직이는 동영상을 감상하기 바랍니다. 그것은 사람의 보행운동을 빼닮았습니다.
컴퓨터 연산은 물론 모터조차 사용하지 않는 ‘장난감’이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골격과 관절 모양이 적절하면 중력에 몸을 맡기기만 해도 진자운동으로 토크(Torque: 물체에 작용하여 물체의 회전을 촉발하는 물리량으로 ‘비틀림 모멘트’라 부르기도 합니다.)가 발생해 안정된 보행을 실현할 수 있다. 즉, 보행 균형은 뇌 신경 회로에서 생성되지 않고 다리의 ‘형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셈입니다. 고도의 구동력과 제어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보행운동의 이점은 효율적인 ‘연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시간 걸어도 좀처럼 지치지 않습니다.
인류는 보행에 적합한 다리 골격을 완성함으로써 강력한 이동 수단을 손에 넣게 된 셈입니다. 실제 사람의 이동 범위는 야생동물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넓죠.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라는 침팬지조차 태어난 지역에서 평생을 마치는 게 일반적입니다. 효과적인 직립 이족보행을 시작한 현생 인류는 6만 년 전 아프리카 대륙을 나와 4만 년 전 머나먼 북극권까지 거주지를 확장하고, 지구 구석구석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 ‘기행문’이라는 예술작품까지 창작해냈습니다. 모두 사람의 다리 덕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러 의미에서 동물계에서도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아름다운 ‘각선미’를 타고나는 생물입니다.
갑자기 평소 귀하게 여겨본 적이 별로 없는 튼튼한 내 두 다리가 오늘따라 왠지 고맙고 대견하게 여겨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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