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시의 영역을 개척한 시인
김광규 시인은 일상시(日常詩)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김광규의 시는 그 생각에 비뚤어짐이 없으며 그 어조에 격렬한 부르짖음이 없으며 그 은유에 현란한 모호성이 없고 그 관심이 소박한 일상을 넘어서지 아니한다."라고 말했죠. 김광규 시인 스스로도 자신의 시는 오페라에 있어서의 레치타티보(서창)쯤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시는 아리아처럼 목청을 높여 외치지는 않고 낮게 중얼중얼거릴 뿐이지만 이 중얼거림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합니다.
시인 문태준
2.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출전 :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1979).
3. 이숭원, 해설
전부 49행으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시상의 전개가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 단락은 1행부터 19행까지로 4·19가 나기 전 열정에 들뜬 젊은 날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이고, 둘째 단락은 20행부터 38행까지로 18년의 세월이 흐른 후 중년의 나이가 되어 소시민으로 다시 만난 현재의 모습을 나타낸 부분이며, 셋째 단락은 39행에서 49행까지로 이렇게 변화한 모습에 대한 시인의 반성과 상념이 나타난 부분이다
.
조지훈 시인이 4·19는 우리의 첫사랑이라는 말을 하였다. 첫사랑이란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다. 첫사랑에는 사랑 그것만 있지 상대방의 배경이라든가 조건 같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처럼 4·19는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부패한 독재 권력을 무너뜨리겠다는 순수한 열망만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젊은 날 예기치 않고 찾아든 첫사랑과 같은 사건이다. 첫사랑은 순수한 열정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4·19 역시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하였기에 정치적 현실과 부딪치자 실패의 궤적을 드러냈다. 그러나 4·19의 순수성은 4·19를 치른 세대에게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40, 50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도 첫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4·19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4·19 세대에게 4·19는 그들의 첫사랑 이었다.
이 시의 화자는 ‘나’라는 단독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의 집단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자신을 포함한 4·19 세대 모두가 부끄러움과 허탈감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나’라는 개별적 화자 대신에 ‘우리’라는 공동의 화자를 내세운 것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 화자와 청자 사이의 거리감이 소실되며 이 시를 읽는 독자들까지 우리의 하나로 흡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말하자면 삶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상실한 채 나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이 시의 화자이자 청자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시는 시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반성의 지평을 마련해 준다.
첫 번째 단락에서 시인은 4·19가 나던 해 연말 친구들과 만나 토론을 벌이고 고민을 토로하며 술을 마시던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때 우리들은 젊음의 열정이 넘쳤기에 불 없는 차가운 방에서도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열정의 순수함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어리석음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인 스스로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라고 밝혔거니와, 현실이 정치적 관계에 의해 복잡하게 얽혀든다는 것을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젊은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지닌 순수의 열정이 세상을 밝히는 불이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 자체가 착오였다는 것은 그들의 사회적 생활이 증명해 준다. 그리고 1연 끝 부분에 나오는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라는 구절은 젊음의 순수성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좌절을 겪을 것이라는 예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18년의 세월이 지난 뒤 그때의 동창들이 다시 연말에 만났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던 그때의 패기와 열정은 다 사라지고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평범한 소시민으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생활에 찌든 소시민답게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월급을 묻고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고 정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무언가 문제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는 것이 익숙한 습관이 되었다는 것은 소시민으로 잘 길들여졌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순진한 젊은이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상을 사는 방식을 제대로 파악하게 된 상태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
옛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슴이 텅 비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은 몇 사람은 추억이 깃든 옛 캠퍼스 터를 걷는다. 그러나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들어서 있을 뿐 우리를 반겨 주는 것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 다만 플라타너스 몇 그루가 우리의 부끄러움을 일깨울 뿐이다.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이 사라지고 나약한 소시민으로 주저앉아 가는 우리들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마른 잎을 흔드는 바람이 속삭이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들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고 만다. 끝내 진정한 자기반성의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종결은 소시민적 삶의 실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한층 더 사실적이다. 이 냉정한 결말에 의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대한 우리의 그리움과 회한은 더욱 커진다. 그리고 그 그리움과 회한의 감정은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을 오히려 진정한 반성의 차원으로 이끌어가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 시의 진정한 감동은 바로 여기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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