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진건, (玄鎭健, 1900~1943)
현진건은 대구에서 태어나 도쿄 세이조 중학 4학년을 중퇴한 뒤, 상하이로 건너가 후장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 1920년 《개벽》에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후 홍사용, 이상화, 나도향, 박종화 등과 함께 《백조》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1920년대 신문학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하였습니다. 현진건 작가는 일제 치하에서 민족이 겪는 수난과 고통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리얼리즘 작품을 주로 창작해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선구자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는 소설가였을 뿐만 아니라 언론인,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는데, 그의 작품은 총독부의 검열로 탄압을 받은 한편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단편소설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B 사감과 러브레터> <운수 좋은 날> 등과 장편소설 《무영탑》 등이 있습니다.
2. 김첨지의 너무 슬픈 하루, <운수 좋은 날>
김 첨지는 오늘 괴상하게도 운수가 좋다. 인력거꾼으로 일하면서 돈 벌기란 쉽지 않은데, 오늘은 아침 댓바람부터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을 받았다.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뻐하던 그는 이 정도면 모주 한 잔을 사 먹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병든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다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아내는 무슨 병인지는 모르지만 중병에 걸렸다. 아내의 병이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심했던 것은 아니고, 10일 전 조밥을 먹다 체한 뒤 악화되었다. 일단 약을 쓰기 시작하면 병이 따라붙는다는 괴상한 신조에 의사에게 보이지도 않고 약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팔십 전에 만족해하던 김 첨지에게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온다. 남대문 정거장까지 일원 오십 전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김 첨지는 손님을 받기 전 잠시 망설인다. 오늘은 부디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부탁도 부탁이거니와 갑작스레 몰아치는 행운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의 재촉에 인력거를 끌고 달리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그는 손님을 태우자 거의 날듯이 달리게 된다. 다리가 왠지 가뿐했던 것이다. 집에 가까워지면 다리가 무거워지고, 집에서 멀어지면 날 듯 가볍고 빨라진다. 그렇게 남대문에 도착한 그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린다. 이만하면 흡족하게 벌었고 이제 집에 돌아갈 법도 하건만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침 선술집에서 나오는 친구 치삼이를 붙잡고 술 한잔한다. 김 첨지는 주정을 부릴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도 아내의 부탁을 잊지 않고 설렁탕을 사 간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짐짓 고함을 친다. 폭풍 전야의 침묵처럼 고요한 집 안이 그를 불안하게 한 탓이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적막감에 고함을 치며 방문을 벌컥 연다. 그리곤 누운 아내의 다리를 걷어차며 있는 대로 소리를 내지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다리가 아니라 나뭇등걸 같은 느낌이다. 확인해 보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었다.
3. 불행과 행운이 공존하는 비극적 아이러니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은 아이러니와 반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 가지만 집에 도착해 보니 아내는 이미 죽어 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돈을 많이 번 운수 좋은 날이었지만 아내가 죽었기에 기쁜 날이 아닙니다. 일이 잘돼 운이 좋은 날임에도 지독히 불행한 날인 것이지요. 이러한 반전은 1920년대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4. 고통받는 하층민의 삶을 담은 모더니즘 소설
김 첨지는 동시대에 고통받는 하층민을 상징합니다. 작품 속에서 김 첨지는 온갖 비속어를 여과 없이 씁니다. 이는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데 있어 매우 효과적입니다. 작가는 김 첨지의 하루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행운과 불행의 상반된 상황을 선명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표현합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비극적 상황을 암시하며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효과를 줍니다. 이러한 묘사는 풍자적, 사실적 성격을 띤 모 더니즘 소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5. 배경과 주제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20년 일제강점기 겨울이고 공간적 배경은 서울입니다. 김 첨지는 병든 아내를 집에 내버려 둔 채 무거운 마음으로 일하러 나갑니다. 간만에 일이 잘 풀려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설렁탕을 사 들고 가지만 이미 아내가 죽어 결국 전해 주지 못합니다. 그의 속은 갈가리 찢기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김 첨지가 그 시대 고통받는 하층민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작가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하층민이 겪었던 비극적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인물
김 첨지는 인력거꾼입니다. 인력거꾼은 사람이 직접 마차를 끌어야 하는 아주 힘든 직업입니다. 그에겐 병든 아내가 있습니다. 인력거꾼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를 제때 치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하는 설렁탕도 사 주지 못합니다.
아내는 몸이 아프지만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합니다. 또 설렁탕을 먹고 싶어 하지만 결국 남편이 사 온 설렁탕도 먹지
못하고 죽습니다. 최소한의 소원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치삼이는 김 첨지의 친구입니다. 김 첨지와 함께 일제강점기 때 억압받았던 하층민을 대표합니다.
7. 김첨지에게 집이란
김 첨지는 인력거를 몰며 이상하게도 집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몸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반면 집과 가까워질수록 걸음은 다리를 끄는 듯 느려지고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가 집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집이란 벗어나고 싶은 곳입니다. 몸을 혹사시켜 일을 해야만 겨우 한 끼 먹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상상도 못 할 가난이 있는 곳, 사랑하는 아내가 아파 누워 있지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곳인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삶은 고통스러울 뿐이고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맨 정신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과 조금이라도 거리가 멀어지면 해방감을 느낍니다. 그에게 집이란 끊을 수 없는 족쇄이며 애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곧 그가 살고 있는 현실,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8. 인력거꾼 김첨지는 한달에 얼마를 벌었을까?
1925년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인력거꾼의 한 달 수입은 30원가량이었습니다. 30원은 총독부가 빈민을 나누는 기준으로 사용한 금액으로, 이들의 경제적 상황이 열악했음을 보여줍니다.
1920년대 경성의 도로는 운수 사업자 간에 치열한 손님 쟁탈전이 펼쳐지는 전쟁터였습니다. 1925년 처음으로 택시회사가 설립됐고 1928년 버스사업이 인가되면서 5전이라는 파격적인 요금이 제시되자 인력거꾼들은 공황에 빠지기도 했죠. 당시 인력거 요금은 단거리의 경우 5정보(약 500m)에 15전, 장거리는 1리(약 4km)에 60전이 기준이었습니다.
민족적 차별 역시 심했습니다. 일본인 인력거꾼이 수입의 30%가량을 사납금으로 냈던 것에 비해 조선인은 40%를 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거꾼이 빼어든 카드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1922년 사납금 제도 개선 등을 위한 동맹파업을 벌였습니다. 교통운수업 종사자가 벌인 첫 집단행동이라는 평가입니다. 또 소비조합을 결성해 생필품을 공동 구매하고 조합 운영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여기서 생긴 수입으로 1925년 대홍수 때 수재민을 위해 음식을 기부하고 1929년 경상도 일대에서 대기근이 벌어지자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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